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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Feb 25. 2024

지금 나의 삶을 누군가에게 준다면... 받을까?

'나'에 대하여

"지금 너희들 또래, 평균수명이 얼마인지 아니?"

뜬금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내 수업은 결코 디테일하지 않다. 마치 욕실수납장에 색깔별로 정리되지 않은 수건같다. 내키는대로 꺼내쓰지만 그 곳엔 수건뿐이다. 각각의 수건은 모두 깨끗하고 잘 개켜진 상태이기에 수건이 필요한 누구에게 아무 것이나 꺼내줘도 된다. 원하는 색깔로 말이다. 내 수업도 그렇다. 


1학기간 학생들에게 줘야 할 건 명확하지만 계획하고 순서를 매기기보다 그 날 그 날 학생들과의 토론으로 주제를 끄집어낸다. 학생들의 관심사와 질문, 그리고 사회적 이슈를 테마로 '책임경영', '리더십', '기업윤리', '경영역량' 등을 강의해온 나에게 수업시간은 정말 날것 그대로다. 평균수명이 얼마인지 묻는 질문에 몇몇 학생들이 "80?", "100?"한다.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좀 혼내도 되겠니?"  

   

2015.2.23일자 타임지표지

큰 이변이 없는 한 2010여년 이후 태어난 아이들은 140여세까지 산단다. 감히 감이 안온다. 얼추 계산으로도 지금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100세 이상은 산다는 사실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조금 혼내도 되겠니?'라는 내 말에 '화'가 없어서였는지 학생들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학생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내 질문은 '인생전체를 보게' 하려는 의도를 좀 더 강하게 각인시키고 싶은 욕구때문에 내지른 말이었기 때문이다.     


"00야, 혹시 정말 소중한 게 있니? 아무도 모르게,

 그냥 그 어떤 것과도 결코 바꿀 수 없는 그런거"

"일기장이요"

"반지요"

하나씩 다들 있나보다.     

그렇지.

남들에겐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나에게만 있는, 세상에 유일한 거.

그래서 너무너무 소중한 거, 귀한 거... 

그런 거...     


이 질문을 하기 직전, 나는 지식(knowledge) - 인지(intelligernce) - 지혜(wisdom)의 단계를 설명하면서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만드는 변수가 'universal truth'라는 설명을 하고 있던 차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universal(범우주적인)한 관점에서 한 번 바라볼까? 그 시선에서 정말 소중한, 세상에 유일하기에 정말로 귀한 것은 뭘까?" 


똑똑한 몇은 바로 나의 질문의 의도를 알아챘고 한글자한글자 꾹꾹 혀를 눌러 내뱉은 내말의 단호한 에너지가 전해졌는지 벌개진 두 눈을 살짝 들킨 친구도 눈에 띄었다.      


순간 강의실의 공기는....

알고 있는데 깨닫지 못한

애써 외면했던

잘못한 건 없는데 왠지 명치끝이 아파오는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에 제대로 가격당한

각자 자신에게 미안하여 난처해하는...

이 젊은 성찰자들을 위해

한쪽에선 외부와 차단된 회오리가, 다른 한쪽에선 자신과 자신의 지능이 차단된 상태에서 냉큼 이성을 호출하라는 외부에서 휘몰아치는 회오리가 느닷없이 일었다.     


찰나보다 조금 긴시간이 지난 후 그저 느낌만으로도 40명 가량의 학생들은 각자 유체 이탈의 능력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며 자기자신 속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다. 우리 모두는 수행자나 성직자가 아니기에 긴 시간 고행으로 자신을 몰아갈 필요까지는 없지만 가볍게 치부될 지 모르는, 이 '찰나보다 조금 더 긴' 시간만으로도 지금껏 간과했던 세상속의 나를 진짜 나에게 다시 데려다줄 수 있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은 1번뿐인데라며 쉽게 술잔을 부딪혔었고

'이 세상에 나는 유일하다'는 당연한 진리도 남성들 군대얘기나 여성들 출산얘기처럼 흔하게 취급했었다.

우리는 진짜 소중한 것에 대접이 인색했다.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에 대해

'인간이 다 그렇지 뭐'라며 인간이라는 종(種)속에 나도 퉁치고 묻어가면 그만이었다. 

    

세상에 유일한 

단 1명이면서

단 1번뿐인 인생이면서

이 '1'이라는 숫자는 

경쟁하며 차지하려는 '1'보다

하찮은 '1'로 취급되었었다!

    

소중한 '',

세상 유일한 ''

분명 이유가 있어서 여기에 존재하는 

어떤 큰 이유로 지금의 환경에서 여기 이렇게 앉아 있을테고

우주가 바라는 바를 내가 아직 이뤄내지 못해 그 많은 사건사고들 속에서도 여태 살아있는 것인데 말이다. 


얼마전까지 코로나로 지속적으로 사망자가 증가했었고 지구 한쪽에선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말도 안되는 사건사고들로 뉴스는 심심할 새가 없는데 지금까지 멀쩡한 신체와 정신으로 살고 있는 이 사실에 감사한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 받아들인 오만한 자신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여태 이리 건강하고 영민하게 이 자리에 서 있게 하는 데는 분명 universal한 메세지가 있지 않을까?     


무언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려

아니드러나야만 한다면

''를 통해서만 드러날 것이라면

그것이 창조될 때까지 ''는 분명 메개자여야 하기에 세상이 나를 지켜준 것이고 또 지켜줄 것이다.     


학생들 대다수는 취직을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게임에 수시간을 빼앗기고 부모탓, 경제탓, 환경탓, 학교탓, 탓탓탓하느라 또 수시간을 잃어버리고 자신으로 시선이 향하기보다 남들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돈은 얼마나 버는지 온통 타인을 정찰하는데 시간을 내다 버린다. 

     

일기장도, 반지도 너무 소중해서 먼지가 쌓일까, 누가 훔쳐볼까, 닳을까, 없어지면 어쩌나 애닳는데 우주가 만들어준 단 1사람인 ''의 단 1번뿐인 인생에서단 1번뿐인 지금 이순간나는 얼마나 나의 행동거지들을 함부로 취급해왔는지 자기 자신과 우주만은 알고 있겠지.    

 

착하게 살 필요없다.

그저 쓰임있게 살면 '선'한 삶이다.

애쓰며 열심히 살 필요없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때에 맞추어 하면 된다.

긍정적이고 능동적일 필요없다.

그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자기 몫을 하면 된다.

열정적이며 투지에 불타오를 필요도 없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그 자리를 지켜내면 된다.

용기도 의지도 필요없다.

그저 세상이 원하는 사람의 길을 묵묵히 걸으면 된다.

비결과 노하우를 원할 필요없다.

나는 세상에서 유일하기에 내가 유일한 비결이고 노하우다.

뭘 해야 할 지 망설일 필요없다.

''를 통해 세상으로 흘러갈 그 정체는 자력(自力)으로 창조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정체를 

'사명'이라고 부른다.  

   

하다 못해 작은 집을 하나 지을 때도 조감도와 설계도를 먼저 그리고 기일을 정하고 공사를 시작하는데 어찌 소중하면서도 유일한 '나'의 인생설계에 조감도가 없을 수 있나. 조감도가 머리 속에 그려져야 설계가 될텐데 말이다. 공사기간, 공사대금, 공사주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디테일한 설계도는 아니더라도 전체적인 조감도는 먼저 그리고 걸어야 하지 않을까. 


절대 다시 갈 수 없는 단 1번의 여행이 허락된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어디로 갈까? 가서 뭘 먹을까? 가서 뭘 하고 놀까? 하며 얼마나 스케쥴짜는 데 골몰하겠는가? 어떤 한 순간에도 매정해지거나 외면하거나 방관하면서 시간을 소홀하게 보내진 않을 것이다. 결코 숙소에서 뒹굴거리며 게임이나 하면서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인생은 몇박며칠에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서 감이 안 온다고 위안해도 괜찮다.

어느 누구도 아닌, 인생의 주인인 자신이 그 위안에 납득된다면 말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며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정하는데에

자신의 꿈을 찾고 그 꿈을 위해 어떤 시기에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해

20대를 통털어서라도 꼭 알아내길 바란다.고...

좀 혼내도 될까?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것에는 아마 이러한 간절함이 있었다 하겠다. 뻔한 말이겠지만 진정 자신을 소중하게, 자신의 단 1번뿐인 인생에 단 1번 가는 그 길에서 자신이 남기고 가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지금 모든 것을 멈추고 내면과 대화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무언가를 추구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애써왔지만 설사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떠난다 하더라도 하등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겠다. 나를 통해 세상에 나오도록 부여받은 그 정체는 내 육체가 떠나더라도 스스로 세상에 남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린 그라본'이 말한대로

'우주가 약속한 것(주1)'이기 때문이다.     


나의 새벽독서 멤버들과도 나는 같은 대화를 주구장창 나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당신이 오늘도 이렇게 맑고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한 것은 무엇때문인지, 

세상이 당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과업은 무엇이라 여기는지, 

이를 위해 당신은 무엇을 창조해낼 것인지... 

질문은 끝이 없지만 가슴속에는 각자 하나의 답을 내고 있다. 

그리고 한분 두분 자신만의 삶을 위해 자기를 창조한다.


정근아 아티스트의 브랜드 '더미그나' 로고

며칠 전 2024년 2월 22일. 

함께 새벽독서를 하는, 호주에서 아티스트로 일하는 한 작가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30일만에 이룬 쾌거다. 우리는 모두 자기 안에 커다란 자신을 품고 있다. 나만 몰랐지 세상은 이미 내 안에 커다란 씨앗을 심어놓았던 것이다. 이를 찾고 자신만의 것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자기가 원하는대로 만들어가기 위해 이 평범한 아티스트는 용감하게 단호하게, 그리고 정말 씩씩하게 관성을 뒤로 하고 자신만의 것을 창조해냈다. 

브랜딩을 해보자! 촉박하게 정했다. 몰랐기 때문이다. 처음 하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감각적인 느낌으로 의미를 담고 날짜를 정했다. 


'나'와 '내 안의 나', 그리고 '나'와 '타인'. 2가 모이면 전체가 되니 나에게 집중하여 나답게, 나다운, 나여야 하는 것을 찾자는 의미로 

2월 22일, 2주뒤를 오픈으로 잡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CI, BI를 만들고 로고탄생!
첫 제품출시, 그리고 시도한 펀딩! 

https://www.wadiz.kr/web/wcomingsoon/rwd/273366?_refer_section_st=COMING_SOON_48

펀딩당일 오전까지 감감 무소식이더니 오후가 되어 단 1번으로 바로 심사에 통과해버렸다. 말도 안된다고, 우리가 뭘 했다고... 준비가 미흡할 지 모르나 이것이 바로 초심자의 행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린그라본이 말한 '우주의 약속'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또 한번의 소름!

같은 날 민간우주선이 달에 착륙했다.

브랜딩을 준비하는 내내 작가는 우연히 알게 된 캐네디의 연설(주2)에 꽂혀 있었다. 1960년대, 캐네디는 10년뒤 인간은 달에 갑니다!라는 말도 안되는 연설을 했고 그는 그 사이 암살되었지만 실제 연설 6년뒤 인간은 달에 발을 디뎠다. 꿈은 이뤄진다는 것에 꽂혀 있던 작가가 런칭일을 정한 것이 2024년 2월 22일, 그리고 바로 며칠 전, 민간우주선이 달에 도착한 것도 같은 날인 2024년 2월 22일(현지시간). 

https://brunch.co.kr/@maypaperkunah/79

과연 

우연일까? 

신호일까? 

진짜 우주의 약속일까?


남들은 모른다. 본인만이 안다. 브랜드를 만드는 30일간 얼마나 간절하고 치열했는지, 이에 대해 우주가 답을 해준 것이다. 약속을 지켜준 것이다. 


그렇게 3월 22일, 4월 22일 연이어 브랜드의 제품이 출시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했다. 우리는 새벽독서에서 배운대로 모두가 힘을 합치니 '시도'는 '도전'이 되고 '도전'은 '시작!'을 선물했다. 

이제 시작되었으니 그냥 걸으면 된다. 

묵묵히.. 말이다.

실패의 양을 초반에 충분히 쌓을 것이다.

이 과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기에 묵묵히.. 그냥 가면 되는 것이다!

https://www.wadiz.kr/web/wcomingsoon/rwd/273366?_refer_section_st=COMING_SOON_48

무엇이 남든 남는다.

내가 남기든 스스로 남든 남는다.

스스로가 숙고에 투자한 시간과 간절함만큼 남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아무것도 남지 않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구나'라는 진리는 남는다.


남은 그것이 세상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출동한다. 어떤 조화를 위해 무엇을 남길지는 내가 무엇을 숙고하는지에 달렸다. 내 일기장을, 소중한 내 반지를 누구에게 준다면 이는 단지 일기장이며 반지라는 물질의 가치를 초월한 소중함을 상대에게 주는 것이다. 



혹 지금 나의 삶을 그대로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면 누구에게 줄 것인가?

혹 아무도 안 가져간다고 손사래를 치는 삶이라면 지금.. 다시 한번 정돈해야 하지 않을까?

혹 너도나도 가져가겠다고 덤비는 삶이라면 더 많은 이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더 키워보면 어떨까?


바로 이 지점에서 위의 질문에 대한 자신의 대답에 우리 각자는 귀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내 삶을 누군가가 탐낸다면,

나의 고양된 정신과 나만의 소중한 삶을 닮고 싶다면. 

나는 세상에 해야 할 몫은 다 한 셈이다.     


사명을 품고 산다는 것은 

비장함이나 특별함이 아니라 오히려 평온함이며 단순함이다.

안간힘을 뺀,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기에 '나'만 잘 알면 된다.

사명을 지니고 사는 것이 창조의 고통이라면 

사명없이 살아지는대로 사는 것은 지옥일 것이다.    

 

사명을 품고 산다는 것은 

내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이 대자연이 

꼭 쓰임이 되는 사람으로 나를 돕는 것에 대한 보은이며

이러한 삶의 길은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의 그 어떤 빛보다 아름다울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머무른다는 것은 분명한 하나의 사건이다.

이 하나의 분명한 사건은 

단 1번만 존재하면서

단 1명인 나를 주인공으로 전개되는 것이니

이 모든 우주의 에너지 역시 '나'의 생명을 위해 존재한다는 우주의 대법(大法)에 따라 

항상 내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해내야 하는지 나의 사명에 따라야만 할 것이다.  

   

나 역시 더미그나의 대표인 정근아작가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나의 사명을 들여다 본다.

학생들에게, 새벽독서멤버들에게 과연 이렇게 주장할 자격은 있는지 나를 깊이 들여다 본다...

그리고

50이 넘은 나는 뒤늦게 사명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좀 더 진지하게 내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언제 내게 자리했는지 모를 '사명'이라는 두글자의 정체에 내 혼(魂)을 담으려는 시도는 결코 머리나 일상의 습관에서 해결되지 못한 채 많은 시간 애닳겠지만 힘을 버리니 내게로 오는 수많은 느낌들이 감지된다.


내가 주입하는 힘을 빼니

나를 이끄는 그 힘을 따르게 되리라

묵묵히... 천천히.. 고요히...


주1> 여기가 끝이 아니다, 린그라본, 황을호 역, 2021, 나비스쿨 

주2> 존에프케네디 대통령 명연설 ("Why go to the Moon?") | 한글 번역 - YouTube

        (발췌 : 정근아작가 브런치 :  https://brunch.co.kr/@maypaperkunah/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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