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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에서

4. 덴마크의 국민시인, 옌스 로젠달(Jens Rosendal)을 기리며

by 새벽별

시댁에서 북서쪽으로 30킬로미터를 달리면, '베스테렌 발룸(Vesterende Ballum)'이라는 작은 마을에 닿는다. 이곳은 서쪽 바다와 인접해 있으며, 밀밭으로 둘러싸인 아담하고 평화로운 동네이다. 풍경은 마치 19세기 덴마크 화가, 에밀리 문트(Emilie Mundt)의 <가을풍경> (Høstlandskab-1912)을 보는 듯하다. 마을에 들어서니, 바다와 가까워서 그런지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한낮인데도 인적이 드물어 고요했다.


이곳은 91세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반세기 가까이 살아온 시인, 옌스 로젠달(Jens Rodendal)의 '마을'이다. 그는 덴마크 국민들로부터 깊이 사랑받았던 시인이자 교사였다. 그의 시는 찬송가와 민요로 재창작되었으며, 일부는 대중노래로도 불렸다. 그중 널리 알려진 곡은 <Du Kom med alt det der var dig>(당신은 당신이었던 모든 것과 함께 왔습니다)라는 사랑 노래이다. 감미로운 선율에 시가 어우러진 이 노래는 가족파티, 결혼식, 장례식에서도 자주 불린다. 지난 시아버지의 팔순 잔치에도 당연히 빠지지 않았다.


2023년 여름, 우리가 시어머니와 함께 이곳을 방문했을 때, 시인은 여전히 마을에 살고 있었다. 마을 교회 앞에 자리한 그의 집은 전통 방식으로 지어진 소박한 농가로, 짚으로 덮인 지붕이 인상적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거무스름하게 변한 지붕에는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 흰색으로 칠한 벽에는 덴마크 가옥답게 창이 많았다. 집 앞에는 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고 하얀색 벤치가 놓여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날, 문 옆에는 검은색 자전거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자칭 이 지역 '전문가'인 시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로젠달 씨는 자전거로 다니는데, 자전거가 있다는 건 지금 집에 있다는 거지."


로젠달은 덴마크의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의 감정을 노래한 시인이었다. 교사로 근무하면서 시를 썼던 그는 아내와 세 아이를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80년대 초, 쉰 살이 되던 해에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오랜 결혼 생활은 막을 내렸고, 그는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시인이 자란 기독교적 환경에서 동성애는 죄악으로 여겨졌기에, 그는 사랑할 권리를 위해 싸워야 했다. 교회와 맞섰던 로젠달은 그 과정에서 힘든 역경을 견뎌야 했지만,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교회와 화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시인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시인과 그의 벤치, 바덴 해>


시인의 집 앞에서 길을 따라가면 드넓은 서쪽 바다인 바덴 해(Wadden Sea)가 펼쳐진다. 멀리 맞은편에는 휴양지로 유명한 뢰뫼 섬이 보인다. 길의 끝은 물방울 모양으로 되어 있고, 그 안쪽에 고동색 긴 의자가 자리한다. 벤치에는 '옌스 로젠달의 벤치: 시인의 생일 1932년 5월 17일'이라 적힌 금속 라벨이 붙어 있다. 그 옆으로는 시인의 이름을 딴 '옌스 로젠달의 길'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덴마크인들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다.


벤치는 바다로 향하고 있어, 거기에 앉아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여름이라 주변의 목초지는 짙은 초록빛을 띠었다. 벤치를 중심으로 양 옆으로는 피크닉 테이블이 있어, 간식이나 도시락도 먹을 수 있다. 그날 우리는 거센 바람을 맞으며 시인의 의자에 앉았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스치고, 바람을 피해 고개를 숙이느라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진 못했지만, 그 순간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시인의 의자에 앉아 바다와 들을 바라보니 왠지 나도 시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앞서 언급한 로젠달의 사랑노래는 시인이 새 연인에게 고백했을 때 쓴 시로, 지금은 모든 이의 사랑노래로 자리 잡았다. 총 5연으로 구성된 시의 마지막 연은 그의 인생관을 잘 보여준다.


At livet det er livet værd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네.

på trods af tvivl og stort besvær 의심과 큰 고통에도 불구하고.

på trods af det, der smerter, 아픔이 있더라도,

og kærligheden er og bli'r, 사랑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네.

og hvad end hele verden si'r, 세상이 뭐라고 하든,

så har den vore hjerter.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훔쳐가 버렸네.


<Du Kom med alt det der var dig> 중에서


나는 시인의 벤치 앞에서 바다를 등지고 마을을 바라보았다. 누런 밑밭 뒤로 농가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인 풍경은 평화로워 보였다. 다시 바다로 눈을 돌리니 파도가 치고 세찬 바람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평온한 풍경과는 달리 순탄치 않았던 그의 삶. 그 벤치에 앉아 시인은 인생의 평온과 역경이라는 두 얼굴을 마주했을까?


우리가 다녀간 지 다섯 달 뒤인 2023년 12월 말, 옌스 로젠달은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시어머니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섭섭해했지만, 그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바다와 들, 하늘로 감싸인 아름다운 시골 마을에서 그는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 자신에게 솔직한 인생을 선택했다. 그의 인생을 떠올리며, 잠시 눈을 돌려 내 안을 들여다본다. 나는 얼마나 솔직하게 살아왔을까? 나이가 들수록 남의 시선에 덜 얽매이게 되었지만, 여전히 솔직함을 두려워할 때가 있다.


시인은 떠났지만, 그의 이름은 사랑과 용기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이곳을 찾을 것이다. 시인의 길을 걸으며, 그의 의자에 앉아 바다와 마을을 바라보며, 삶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잠시나마, 자신 또한 시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바로 하늘과 바다와 들이 만나는 이곳, 시인의 마을에서.




벤치 사진 출처:https://da.m.wikipedia.org/wiki/Fil:Jens_Rosendals_B%C3%A6nk, _Ballum.jpg

시인 사진 출처:https://www.kristeligt-dagblad.dk/kirke-tro/sange-til-vennen

https://hojskolesangbogen.dk/nyheder/2024/jan/nekrolog-jens-rosendal-1932-2023

https://www.dr.dk/nyheder/seneste/manden-bag-sangen-du-kom-med-alt-det-der-var-dig-er-doed-91-aar -gamm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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