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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성문화가 우리 문화에 남긴 흔적과 반성

by 소정 Oct 23. 2021
본 글은 2021년 10월 20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창작지원금과 텀블벅 펀딩의 후원금으로 (도)아이필드에서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책에는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일본의 성문화가 우리 문화에 남긴 흔적


 일본은 현재 세계적인 ‘성진국’으로 불리며 온갖 변태적이고 엽기적인 AV(Adult video)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것을 애청하고 잘 이용하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이렇듯 오랜 시간 일본의 성문화는 다양한 방면으로 우리 문화에 녹아들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 결과, 이제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경악하는 ‘n번방’이나 ‘웰컴 투 비디오’, ‘리벤지 포르노’ 같은 문화를 생산해내고 있다. 


 역사적으로 따져 보면 우리는 반만년을 공창과 공식적인 매춘 없이 살아왔다. 일제식 공창이 도입된 역사는 이제 막 백 년을 채웠을 뿐이다. 하지만 식민 사관, 식민 풍속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폭력적 성 관념과 착취적·도구적 성문화는 현재 우리의 문화 속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일례로 성범죄는 남성의 강한 성 본능으로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사건’이라 여기는 인식이 아직도 굳건하다. 때문에 성매매를 합법화하여 남성들의 성욕 해소 통로를 열어 주는 것이 성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공고하다. 또한 웬만한 성범죄는 ‘남성의 우발적인 성 충동은 어찌할 수 없음을 참작한다’라며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성범죄의 70% 이상은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범죄라는 통계가 있다. 올바른 성 의식을 가지고 진실한 사랑과 충실한 가정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남성은 성 충동이 들더라도 책임감 있게 행동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춥다고 옷가게를 털지 않고 배고프다고 지나는 이의 음식을 뺏지 않듯이 말이다. 오히려 성매매의 인정은 ‘성은 매매 가능한 상품’이며 ‘여성의 몸은 쾌락의 도구’라는 왜곡된 인식만 만들어낸다. 


 특히 우리 사회에 담장 없이 널려 있는 성매매의 파생 상품인 음란물도 마찬가지다. ‘남성의 성욕은 막을 수 없다’라는 면죄부는 여기서도 발휘된다. 포르노 보는 여자는 이상해도 포르노 보는 남자는 당연하게 여긴다. ‘남자는 성욕을 배출해야 하지만, 여자는 정숙해야 한다’는 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가 그대로 작동한다. 심지어 청소년이라도 여학생이 음란물을 보다 걸리면 심각한 문제가 되지만, 남학생의 경우는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으로 치부된다. 때문에 음란물은 애당초 남성을 주 고객으로 삼아 제작되며, 이에 미성년 남성도 큰 죄책감 없이 야동을 구해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그리고 심지어는 미성년 청소년이 큰 죄책감 없이 소아성애물·성 착취물을 만들거나 돌려 보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실제로 2020년 ‘n번방 사건’에 연루된 다수의 성 착취 가해자와 시청자는 10대들이었다. 



지금은 성문화에 대한 반성과 고찰이 필요한 때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고, 낯설어야 조심하는 것이다. 익숙해지면 차츰 그 이상의 것을 탐해가는 게 인간의 습성이다. 2009년 EBS에서 방영한 〈아이의 사생활Ⅱ〉에서 충격적인 실험을 했다. 남자 대학생 120명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각각 ‘자연 다큐멘터리, 일반 포르노, 하드 포르노’를 15분간 보여주었다. 이후 다트판에 사물, 얼굴 사진을 붙이고 다트를 던지게 했다. 그러자 하드 포르노를 본 사람들이 자연 다큐멘터리를 본 이들보다 8배나 더 사람의 얼굴에 다트를 많이 던졌다. 특히 여성의 얼굴에 다트를 더 많이 던졌다. 포르노 시청이 사람을 물건처럼 보게 만들고 공격성을 8배나 증가시켰던 것이다.


 누구나 음식 냄새를 맡으면 먹고 싶어지고, 평소 생각에 없던 제품도 홈쇼핑을 보다 보면 사고 싶어지는 법이다. 애당초 음식 냄새를 맡지 않았다면, 홈쇼핑을 보지 않았다면 먹지도 사지도 않았을 것들이다. 음란물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포르노 잡지 판매율이 높은 주일수록 성폭력 발생 비율도 높았다고 한다.1) 캐나다에서 이루어진 다른 연구에서도 성폭행과 아동 성범죄자들은 포르노 노출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고 한다.2)  음란물은 오히려 성욕을 자극한다. 더불어 비현실적이고 폭력적인 연출로 보는 이의 정신을 파괴한다. 

 

 한 번 성에 대한 인식과 관점이 왜곡돼 버리면 건강한 사랑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인간에게는 육체적 사랑만 있는 게 아니다. 진정한 행복은 정신적인 사랑에서 나온다. 그리고 정신적인 사랑은 상대를 ‘인격과 개성을 가진 인격체’로 존중하고 공감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성 인식이 왜곡되고 육체적 사랑만 알게 되면 정신적 사랑은 힘들어진다. 그리고 잘못된 성 인식은 나이·성별과 상관없이 연결된 모든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우리의 성문화에 대한 반성과 고찰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 할 것이다.     



각주 1) L. Baron, M. A. Straus(1984), “Sexual Stratification, Pornography, and Rape in the United States”, : , p.2389.「대학생들의 인터넷 음란물 추구성과 성폭력(강간) 통념 수용태도」,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Vol.14, No.6. 재인용.

2) W. L. Marshall, Pornography and Sea Offenders, In D. Zillmann & J. Bryant(Eds), NJ: Erlbaum, 1989: 이인숙(2013), p.2389. 재인용.


이 글은 2021년 10월 20일에 발간된  <표류사회 : 한국의 여성 인식사> 의 일부 내용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표류사회>에서 만나 주세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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