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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Mar 23. 2019

생애 한 번, 벼랑 끝에서 만나다

까꾸리

2016년 초여름.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온도계의 수은주는 이미 30도를 육박하고 있었다. 그날도 아침부터 기온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찜통을 방불케 하더니, 급기야 몸에서 고기 익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수경을 챙겨 들고 집에서 가까운 포구로 달려갔다. 포구 옆에 종종 스노클링을 즐기는 장소가 있었다. 해안절벽 아래 숨은 그곳은 인적이 닿지 않는 조용한 바다였다. 


망망대해로 눈 부신 햇살이 쪼개져 내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트였다. 암석을 밟고 바다로 내려갔다. 다른 날보다 물이 높고, 파도가 거칠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스노클링을 해본 사람이라면 수면 위아래가 다르다는 것을 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에 장비를 걸치고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좀 차다는 감각이 관절을 타고 전해졌지만, 더위는 모든 것을 마비시켰다. 나는 고무줄처럼 발을 튕기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반동으로 다리를 휘저으면서 앞으로 몸을 밀었다. 그러나 불과 10여 미터도 가지 못하고 섣부른 판단을 후회했다. 나는 한 치 앞도 갈 수 없었다. 파도가 한 번 칠 때마다 몸이 상하좌우로 수 미터씩 움직였다. 그건 수영이 아니라, 나뒹구는 것이었다. 나는 버려진 나무토막처럼 이리저리 휩쓸렸다. 첫 번째 기점인 30미터 밖의 갯바위와 항아리처럼 움푹 파인 해안 사이에 오도 가도 못 하고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수영 실력이 그럭저럭 놀 쯤은 된다고 생각했는데, 오만이었다. 성난 파도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한 번 들어오면 안으로 훅 밀었다가, 나가면서 확 끌어당겼다. 어쩌다 한두 번 버틸 수는 있어도 10여 초 간격으로 계속되는 파도를 당할 재간이 없었다.


당황한 나는 물 밖으로 나오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럴수록 상황은 점점 꼬였다. 먼저 스노클이 빠졌고 뒤이어 수경이 떨어져 나갔다. 숨 한 번 쉬는 게 세상 어떤 일보다 어려웠다. 한 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미친 듯이 손을 저었다.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배터리 게이지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연거푸 물을 먹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는 기운을 비축해야 했다. 머리를 물속에 처박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검은 물속에 물고기들이 보였다. 외롭지 않았다. 물고기들은 떼로 모여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들은 저항하지 않고 파도에 몸을 맡겼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법이었다. 물고기도 이런 파도 앞에서는 헤엄을 치지 않는구나 생각하니 아찔했다. 더구나 나는 물고기가 아니다. 숨을 쉬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5분은 참을 수 있었다. 아니, 에너지 소비가 클 테니 그보다 더 빨라야 했다. 위기를 느낀 뇌가 심장박동과 혈류를 빠르게 돌릴 것이고,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 몸을 움직였다. 몸은 가라앉지 않으려고 필사의 힘을 쏟아냈다. 어느새 나는 처음 수영을 배우는 초급자로 돌아가 마구잡이로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된다, 냉정하자, 스스로에게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내 손은 내 의지와 별개였다. 얼마나 파도와 싸웠을까, 너무 힘이 들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그토록 나약한 사람이라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지나갔다. 하지만 파도는 내게 아무런 여유도 주지 않았다.


나는 위치와 모든 감각을 상실했다. 파도에 얼마나 떠밀렸는지, 어느 쯤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별안간, 손끝에 바위의 한 모서리가 잡혔다. 갯바위에서 툭 삐져나온 끄트머리였다. 나는 미친 듯이 부여잡았다. 그 순간에도 파도는 도망치려는 나를 순순히 놓아주지 않았다. 나를 들어 올렸다가, 한꺼번에 4, 5미터 아래로 떨어트렸다. 파도가 들어올 때 바위를 잡고, 빠질 때 놓쳤다. 손의 악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때 불현듯 까꾸리가 떠올랐다. 다행히 허리춤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었다. 나는 까꾸리를 바위틈에 박았다. 한 번에 되지 않았다. 썰물에 박아 물에 처박히고, 너무 높이 박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렸다가 떨어졌다. 그 와중에 어깨와 다리 한쪽이 바위에 긁혀 피가 터졌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기어이 파도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클라이밍 하듯 암벽을 타고 가까스로 물 밖으로 기어올랐다. 기진맥진해진 나는 바위 위에 널브러졌다. 짙푸른 하늘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지만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하도 청명해서 야속했다. 술에 취한 것처럼 어지럽고 얼떨떨했다. 뭔지 몰라도 마약을 하면 그런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두세 번인가 입에서 맑은 액체가 나올 때까지 토했다.


한참 뒤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몸을 살펴보니 말이 아니었다. 손톱 두 개가 부러지고, 열 손가락이 모두 찢겨 피가 흘렀다. 어깨와 무릎에 긁힌 상처는 꽤 깊었다. 그러나 정작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핸드폰에 표시된 시간이었다. 못해도 한 1시간가량 흘렀겠거니 했는데, 아무리 계산해보아도 15분이 전부였다. 내가 물속에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사투를 벌인 시간이 고작 20분도 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죽을 결심을 했고, 내 지난 삶을 되돌아보았으며,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15분이 아니라, 15시간이라도 모자란 수치였다. 


하긴, 사람이 죽음과 마주한 순간에 시공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옷을 갈아입고 절벽 위로 올라온 나는 바다를 돌아보았다. 거친 파도가 무섭게 갯바위를 할퀴고 있었다. 체온이 떨어졌는데도 털이 바짝 일어섰다. 저런 물에 뛰어들다니, 단단히 귀신에 홀린 모양이었다. 아득한 기분에 휩싸여 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걸음이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자꾸 헛돌았다. 몸에서는 땀이 나는데 계속 부들부들 떨었다. 그날은 아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간이 훌쩍 지나 그냥 어느 선 앞까지만 갔다 왔다고 했다. 아내가 잠결에 말했다. 다음엔 같이 가.


▶해녀들이 쓰는 도구 중에서 까꾸리는 홍합이나 문어 등 바위틈에 있는 것을 채취할 때 주로 사용한다. 지역에 따라 ‘호맹이(호미의 사투리)’라고도 불리며, 전복을 캐는 ‘빗창’과는 모양이 다르다. 앞이 구부러져 있고 송곳처럼 뾰족하다. 오일장이나 대장간에서 오천 원에 구입할 수 있다. 용도가 맞는 건 아니지만 밭을 맬 때 사용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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