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
백의종군길은 서울에서 시작된다. 이순신의 탄생지 건천동에서 시작하여 한산도에서 압송되어 옥고를 치렀던 의금부터를 지나 수원과 오산시를 거쳐 아산 현충사로 이어진다. 공주, 전주, 남원, 구례, 순천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하동, 진주를 지나 합천에서 초계에 도달하게 된다. 강원도를 빼고는 남한 전역의 지방자치도에 걸쳐있다. 가장 빠른 길을 찾아 한양에서 합천 초계로 가려했으니, 이 길은 남한 종단길이며, 고속도로나 철도의 루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순신이 백의종군길에 오른 것이 1597년 4월 1일, 120일이 걸려 8월 3일에 권율의 휘하에 도착한다. 가는 중에 어머니를 잃은 안타까운 마음도 길 위에 묻고, 토사곽란도 치유하며 나라 걱정도 했을 것이다. 그를 환대하고 숙식을 제공한 지역 토호들이 있었을 테고.
2019년 10월 2일부터 1월 30일까지, 120일간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길 걷기' 대회에 참가하여 완주증을 받은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백의종군길 총 670km가 이미 연결되어 있나 보다. 계절은 다르지만 넉 달을 그가 걸었던 길 위에 머물렀으니, 이순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궁금한 건 모든 루트가 확인되어 이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400년 이전의 길을 찾아내고 복원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다. 그동안의 변화를 생각할 때 난중일기 속 기록만을 가지고 길을 찾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산을 깎아 길을 만들고 논밭은 아파트 단지로 변하였으니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고, 행정구역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정책적인 의도나 과도한 치적 욕심에 역사적 고증 없이 왜곡하거나 졸속으로 결정되는 일이 종종 있으니 말이다. 서울의 충무로 명보극장 앞에 세워진 이순신 탄생지 표지석만 해도 1986년, 1988년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급하게 세우느라, 실제 이순신 생가터와는 거리가 있다고 한다.
나는 우선 아산 현충원에서 이순신을 만난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이라도 왔을 법한데 이곳을 방문한 기억이 없다. '성웅 이순신‘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영웅이 아니라 성웅으로 격상되었는지, 용어가 달라져서 의아하다. 비를 맞으며 아산 현충원을 걷는 동안, 이곳이 성역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산 현충원은 이순신의 사당인 현충사와 이순신 기념관이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서울이고, 그의 묘역도 이곳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현충원 내에는 이순신 고택이 있고, 그의 삼남 이면의 묘가 있다. 이순신이 21살에 아산지역 무관 집안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처가살이를 하면서 이곳이 이순신의 집이 되었다. 이순신 고택 마당에는 500년도 더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어서 이순신과 그 후손들의 삶을 고스란히 지켜봤을 듯하고, 이순신이 활쏘기 연습을 했던 활궁터도 있다. 여기서 활쏘기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고 하니, 이순신이 초점을 고정시켰을 과녁을 향해 시선을 함께 맞춰볼 일이다.
이순신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은 1706년 숙종 때 건립되었고, 숙종은 직접 쓴 현충사 현판을 하사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정책과 일제치하에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박정희 정권하에서 이곳은 성역화되었다.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인근의 나무들을 옮겨심으면서 공원화하였고, 사당을 크게 새로 지어 박정희가 쓴 현판을 걸고 지금의 현충사로 자리 잡았다.
지금의 현충사는 사당에는 잘 쓰지 않는 팔작지붕을 하고 있고, 닫집과 마룻바닥, 문을 빼고는 전부 콘크리트로 지어져서 건축적, 역사적 의미가 많이 퇴색된다. 아산시가 다 내려다보이는 위치만큼은 위용이 넘치지만, 이순신 장군이 바라는 바가 아닐 것 같다. 당당한 풍채에 선한 눈빛과 얼굴을 하고 있는 그의 영정은 남의 집에 있는 듯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 넓은 현충원 어딘가에 말을 타고 달리는 동상이라도 하나 있었다면 이런 답답한 마음은 덜했을까?
성역화에 밀려난 구현충사는 영정도 없는 텅 빈 사당에 숙종이 내린 현충사 현판을 달고, 맞배지붕을 하고 있어서 쓸쓸함과 고즈넉함이 함께한다. 이순신의 사당이 현충사 외에도 전국에 여럿 있다는 것은 그가 우리 민족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아산 현충원에서 이순신이 더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순신이 신격화되는 듯한 장소에서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이순신 고택과 유물에 관련된 후손들의 재산 관리 문제는 그 괴리감을 더한다.
백의종군길은 결국 대한민국 국토순례길이다.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이 있었던 바닷가 마을에 가면 그를 진정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초등학생들이 읽는 위인전만 봐도 알 수 있는 이순신에 대해 새삼스럽게 관심을 갖는 건 길 때문이다. 백의종군길의 의미는 길을 다 연결하는 데 있는 건 아닌듯하다. 사람들이 그 길을 걸을 때 의미가 생기는 거다. 이순신을 기억하는 주민들의 축제가 그가 걸었던 마을마다 이어지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충무공 탄신일 4월 28일 즈음은 우리나라 전국에 꽃잔치가 벌어진다. 이순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행사를 치르기에 딱 좋은 때이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순신 탄생 480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으니, 거기부터 다녀와야겠다. 무엇보다도 난중일기 원본을 보고 싶다.
나는 800km의 산티아고 길을 걷고 싶다. 670km의 국토순례길도 걷고 싶은 동기가 생기길 바란다.
'나중에 언젠가'라는 말은 점점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되어간다. 그러니 미루지 말고 서둘러야 한다. 한번 마음먹으면 언젠가는 걷게 된다는 그 말이 부디 이루어지길 바란다.
2025. 12. 22. 기차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