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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Mar 15. 2024

엄마의 손

“엄마, 셔츠가 자꾸 벌어져요. 똑딱단추 좀 달아주세요.”

작은 아이가 얼마 전에 샀다는 가을 셔츠를 가지고 온다. 목이 많이 파여 부담스러웠나 보다.


“그래? 반짇고리 가져와.”

단추를 단 셔츠를 아이에게 건넸다.

“다 됐다, 더 할 거 없어?”

아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방으로 들어가 옷을 입어 본다.     


안방에서 나오던 막내가 한마디 거든다.

“엄마, 나 귀 파줘. 귓속이 간질간질해.”

그러자 방으로 들어가던 첫째도

“엄마, 나도.”

“알았어, 누워봐.”

다시 내 손이 바빠진다.     


우선 작은 귀이개와 캠핑용 조명, 휴지를 준비한다. 거실 소파에 앉아 한 명씩 부른다. 막내가 먼저 달려와 다리를 베고 한쪽으로 길게 눕는다.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간지러운 듯 다리를 오그린다. 동굴 탐험대의 이마에 달려 있는 써치라이트처럼 캠핑용 조명을 이마에 끼운다. 그리고 아이의 귓속을 조심스레 탐험하기 시작한다.     


병원에서는 귀지를 파는 것을 되도록 삼가라고는 하지만 그 시원함을 잊지 못하고 아이들은 또다시 부탁한다. 내 무릎에 누워 온전히 맡기는 아이들의 모습이 좋아 나도 계속하게 되었다. 스킨십이 별로 없는 아이들과 가장 가까이하게 되는 그 시간이 좋았다.     


가족이 많으니 다림질도 바쁘다. 일요일 오후, 아이들은 각자의 교복 블라우스와 치마를 다림질판 옆에 걸어두곤 했다. 교복 치마의 자존심은 주름이다. 다른 곳보다 훨씬 여러 번 정성껏 다린다. 깔끔해진 교복을 입고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의 모습을 보면 왠지 괜찮은 엄마가 된 듯한 착각이 든다. 직장 다니는 엄마라고 대충 구겨진 옷을 입혀 보내는 것이 왠지 마음에 쓰여 다림질은 잊지 않고 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무언가 도움이 필요할 때 엄마를 불렀다.

“엄마!”

컴퓨터가 이상할 때, 주방에서 무언가 못 찾을 때, 욕실에 화장지가 떨어졌을 때.

“엄마!”

가끔은 귀찮거나 벅차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이렇게 엄마를 찾을 때는 시한부 기한이라고 생각해서 해 주려 노력했다. 많은 걸 하진 못해도 적어도 엄마가 나를 위해 무언가 해 주었다는 느낌이 들게 하고 싶었다.  


평소 스킨십이나 말로 하는 사랑 표현에 서툰 나는 그렇게나마 아이들에게 소소하게 엄마의 사랑을 보여주려 했다. 너무 작아 아이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이의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인다고 생각했다. 대신 내 손은 소리 없이 항상 바빴다.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각자의 요구를 내가 제대로 민감하게 알아채고 들어주었는지 항상 고민이었다. 직장 다니면서 힘들다는 이유로 퇴근 후에 나 자신조차 돌보기 힘들 정도로 지치기도 했다. 모든 직장 다니는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무언가 부족한 엄마 노릇에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 때로는 자기에게 관심이 덜하다며 서운해할 때도 있었다. 충분하진 않았지만 아이들이 무언가를 원하는지 알아채기 위해 조심스레 지켜보는 등 나름 부단히 노력했다.     


게리 챔프먼과 로스 캠벨 박사는 ‘아동의 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아이들은 부모가 주는 사랑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며 부모는 아이의 개별 요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녀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려면 아이만의 사랑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고, 그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5가지 사랑의 언어 즉, 신체적 접촉, 확신의 말, 양질의 시간, 서비스 제공의 역할, 선물을 통해 아이의 감정적 욕구를 채워주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챔프먼 박사가 말했듯이 자녀가 애정을 원하는 방식과 부모의 사랑 표현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는다.     


아이들보다 너무 앞서지 말고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달려가야지 하고 항상 마음을 다잡는다. 물론 마음처럼 안될 때가 많다. 그래도 노력한다. 때로는 조언을 하고 아이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것 같으면 그 뒷말을 꿀꺽 삼킨다. 무언가를 할 때도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멈추는 데는 더 큰 에너지가 쓰인다. 그래서 부모의 애간장이 녹는다는 표현을 쓰나 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보내는 정말 필요한 메시지는 결국 하나이지 않을까?

“나는 엄마, 아빠가 지금 필요해요.”

 필요의 방식과 적절한 타이밍을 부모는 잘 탐지해서 적절히 들어주는 것이 제대로의 사랑표현이 아닌가 싶다. 때로는 아이들이 보내지 않은 신호를 보냈다고 지레 짐작하고 너무 지나친 간섭으로 표현하는 부모도 있다. 아이들의 신호가 아닌, 내 욕심의 신호를 아이들의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경계하려 노력한다.     


여전히 신호에 둔감한 나는 오늘도 아이들을 살핀다. 따뜻한 밥이 필요한지, 달달한 케이크가 필요한 때인지, 수다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침묵이 필요할 때인지. 조금이라도 엄마의 손을 필요로 할 때 내밀 것이다.     


얘들아, 언제든 이야기하렴. 엄마 손이 필요할 때 언제든 펼쳐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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