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는 그렇게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큰 아이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더 이상 카메라를 거부했다. 특히 얼굴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하던 둘째는 더욱 그랬다.
가족여행을 풍경 좋은 곳에 가서 기념으로 찍으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몰래 찍으려 해도 어느새 눈치챘는지 뒤로 돌거나 얼른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지갑으로 막기도 했다. 뭣도 모르는 막내만 언니들처럼 가리면서도 엄마가 뭐 하나 싶어 손가락 사이로 슬쩍 볼 뿐이었다.
큰 아이들은 늘어난 공부에 친구 만나느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줄었다. 주말에 어디 놀러 가기도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매번 막내만 데리고 가기 일쑤였고 막내 사진만 잔뜩 이었다. 세 아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 없었다.
어느 여름방학이었다.
“우리, 더운데 박물관 갈래?”실내로 가면 시원하다며 큰 아이들을 설득했다. 박물관이 목적이라기보다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하고 어디든 바람 쐬러 가고 싶었다. 함께 가리라 기대하지 않았던 두 사춘기 아이들도 웬일로 따라나섰다. 오랜만에 세 자매를 이끌고 나서며 마음먹었다. 오늘은 세 자매 사진을 꼭 찍으리라.
모든 것이 시큰둥한 사춘기 첫째, 둘째는 전시품에는 관심도 없었다. 막내마저 재미가 없는지 연신 집에 가자고 한다. 결국 주차장으로 향했다. 달구어진 바닥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그늘 없는 길을 걸어가는 건 정말 곤욕이었다. 햇볕은 너무 강렬했고 그 열기는 입에서 나온 온기보다 뜨거웠다.
풍성한 잎이 덮여 있는 등나무 평상이 보였다. 햇볕도 잠시 피할 겸 쉬었다 가기로 했다. 공기는 더웠지만 햇빛이라도 가려지니 좀 살만했다. 막내는 큰 언니와 함께 조잘대었고 말이 적고 시크한 둘째는 옆의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순간 세 자매가 나란히 앉은 뒷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아이들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은 실루엣이었다. 밝은 바깥에 대비되어 더 강렬한 모습이었다. 옳다구나! 이때로다! 얼른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몰래 찍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세 자매의 모습을 한 프레임 안에 담을 수 있을까 싶어 얼른 찍었다. 찰칵 소리가 들리자마자 두 아이는 뒤를 휙 돌아보았다.
“엄마!”
“뒷모습인데 어때!”
이렇게 세 자매 사진을 찍었다. 뒷모습이었지만 좋았다. 그동안은 둘 아니면 막내 혼자인 게 대부분이었으니까. 세 자매의 실루엣 사진. 귀한 거라 나름 세 자매 사진이라 우긴다. 이제는 함께 있을 시간도 많지 않고 함께 여행 가기도 힘들지만 세 아이의 뒷모습만 봐도 좋다. 그렇게 자라는 거라고 부모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흐뭇하게 바라본다.
아이들이 다 자라면 다시 나에게 앞모습을 보여주며 사진 찍을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와 함께 찍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어른이 되어 엄마를 더욱 이해하게 된 거처럼 말이다. 우리 딸들도 다시 환하게 웃는 앞모습으로 바라봐줄 날을 기대하며 흐뭇하게 뒷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