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이었던 막내딸은 방학이 심심했던 모양이다. 집안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베란다 창고의 물건을 한참 뒤지더니 어디선가 부직포를 찾아 나왔다.
“엄마, 바늘에 실을 꿰어 주세요.”
“뭐 하려는데?”
실을 꿴 바늘을 들고 아이는 대답도 없이 방으로 급히 들어갔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뭐 하는 거지? 왜 이리 조용해?’
슬쩍 들여다보았다. 아이는 부직포를 이리저리 자르고 꿰맸다. 뭔가를 만들긴 하는 것 같은데 알 수가 없었다.
“다했다!”
놀랍게도 아이는 권총집을 만들고 있었다. 허리춤에 차더니 장난감 권총을 끼워 넣었다. 어느 서부영화에서처럼 권총을 들었다가 허리춤의 권총집에 넣으며 뿌듯해했다.
“엄마! 멋지지 않아?”
“멋지네! 엄마가 사진 찍어 줄게.”
아이는 온갖 포즈를 다 취했다. 흐뭇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권총을 뽑아 들고 턱을 추켜올렸다.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리더니 총싸움이라도 하듯 두 손으로 권총을 감싸 쏘는 시늉을 했다. 웃음이 났다.
문득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우리 동네엔 여자애라고는 나 빼고 개울가 옆 동갑내기밖에 없었다. 남자아이들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남자애들 사이에 끼어 함께 놀곤 했다. 나무를 깎아 총을 만들기도 하고 대나무로 활을 만들어 놀았다. 어깨에 화살통을 메고 동네 오빠, 친구들과 함께 들로 산으로 돌아다녔다. 남동생과 집 뒤꼍에서 그물로 참새를 잡아 구워 먹기도 했다.
어느 날, 옆집 남자애가 빨간 종이를 가지고 왔다. 그 빨간 종이를 가지고 지나가는 여자애들을 놀라게 했다. 종이를 돌 위에 놓고 다른 돌로 세게 치니 큰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화약 딱총에 넣는 빨간 화약지였다. 너무 신기해서 갖고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학교 운동회가 있었다. 그 시절 시골 학교의 운동회는 거의 마을 잔치였다. 운동회가 한창인 운동장 주변에는 온갖 난장이 들어섰다. 장난감 좌판부터 생활용품, 간식거리에 막걸리와 파전을 파는 간이식당까지.
장난감 좌판에서 그 빨간 화약지를 발견했다. 가슴이 뛰었다. 반가워 용돈으로 바로 샀다. 빨간 종이 사이사이에 볼록하게 화약이 들어있었다. 혹시라도 잊어버릴세라 땀에 젖을세라 아주 소중히 가슴에 꼭 안았다. 너무 신났다.
운동회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사람이 많아 아까 산 화약지를 놓칠 세라 꼭 쥐었다.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는 덜컹 소리를 내며 구불거리는 시골길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창밖을 보던 나는 문득 앞자리를 보았다. 앞자리의 동네 할아버지가 나를 한참 쳐다보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머리를 정성껏 묶고 원피스까지 입은 내가 화약을 소중히 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이내 말씀하셨다.
“쯧쯧, 가시내가 화약이 뭐여. 가시내가.”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뭔가 잘못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 내내 위축되었다. 여자애가 남자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화약지를 가지고 있는 게 이상해 보였나 보다. 우리 어릴 때는 그랬다.
막내를 보니 그때 내 모습과 겹쳐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막내는 권총을 들고 서부 사나이나 된 듯이 총을 뺏다 넣었다 하면서 한동안 놀았다. 이제는 아무도 그 모습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 흐뭇했다.
예전엔 여자아이라고 인형놀이, 소꿉놀이만 하고 남자아이들은 자동차, 공룡놀이 하는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아이가 전쟁놀이하고 남자아이들이 소꿉놀이하면 걱정하기도 했다. 성별에 따라 결정되는 놀이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만들어진 성 고정관념이 나도 모르게 행동을 제약하기도 한다. 인지, 행동, 선택에도 영향을 준다. 어느새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사회적 고정관념에 길들여졌고 의식하지 못한 채 모든 생활 속에서 지낸다.
요즘엔 많이 달라진 추세이긴 하다. 한쪽 성비가 강했던 직업들도 다양한 사람들이 진출했다. 나는 내 아이가, 미래의 아이들이 성역할 고정관념에 갇혀 있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가 총을 사달라고 했을 때도 인형을 사달라고 했을 때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비록 나는 그 고정관념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만큼은 좀 더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하길 바랐다.
아이가 여자답게라는 프레임 안에 갇히지 않길 바란다. 남자답게 여자답게가 아닌, 너는 너답게 나는 나답게가 되어야 한다. 각자의 존재로서 빛나길 바란다. 서로의 독특함과 특별함을 인정해 주는 것에서 이해와 존중이 나온다. 그렇게 타인에 대한 배려도 시작된다. 관계의 유연함이 삶의 유연함으로 연결되었으면 한다.
오늘은 아이가 인터넷에서 봤다며 종이 상자를 가져왔다. 그 안에 휴대폰을 넣어 동영상을 틀고 구멍을 뚫어 돋보기를 붙였다. 생각만큼 잘 되지 않자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면 돋보기를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한쪽 벽의 거꾸로 된 뿌옇게 투영된 화면을 보며 고민한다. 아무래도 뭐든 다 있다는 그곳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