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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Mar 22. 2024

엄마한텐 괜찮아

막내 아이가 5학년이 되면서 친구 관계에 대해 예민해졌다. 걱정스러운 나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중 하나가 친구한테 다른 친구의 뒷말하지 않기였다. 다른 친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지나치면 학교폭력에 엮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느 날 아이가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집에 왔다.

“기분이 별로네. 무슨 일 있어?”

“아니야.”

“걱정되니까 그러지.”

그러자 아이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엄마가 친구 흉보지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래도 기분 나쁜 걸 어떡해!”     


그렇게 뾰로통한 채로 막내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아이 쪽으로 자꾸 눈길이 갔다. 무작정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말이 가뜩이나 사춘기로 감정 기복이 심해진 아이에게 감정을 토해낼 기회조차 빼앗은 듯했다.     


잠자리에 든 아이 방의 불을 꺼주러 가면서 슬며시 옆에 누웠다.

“기분 나쁜 일 있어?”

“몰라.”

“괜찮아. 엄마한테는 이야기해도 돼.”

“엄마가 친구 흉보지 말라며.”

“다른 친구한테 하는 건 그렇지. 괜히 오해하게 할 수도 있고 그 친구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엄마한테는 괜찮아. 엄마는 다른 친구한테 절대로 얘기하지 않으니까. 엄마한테 만큼은 친구 뒷말해도 돼.”

“진짜?”

“진짜. 자기 전에 속상한 이야기는 엄마한테 다 얘기해.”     


그러자 아이의 입에서 이야기들이 한순간에 쏟아져 나왔다

"엄마, 있잖아."

학교에서 속상했던 이야기, 친구때문에 서운했던 일 등 그야말로 장마에 터진 둑처럼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저 들어주고 조금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렇게 30분을 보냈다. 한참 동안 친구에게 서운했던 이야기를 한 아이가 편안해진 얼굴로 말했다.

“아, 엄마 이제 좀 속이 시원해졌어.”     


아이들끼리 서로 감정이 상하고 다투는 경우가 있는 건 당연하다. 다양한 친구들이 함께 하는 학교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 갈등은 어디든 있게 마련이고 중요한 것은 그걸 경험하고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과정을 배우는 시기가 꼭 필요하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배우고 조율해 가는 과정 중에서 생기는 감정적 고민이 있어야 아이는 생각을 하고 성장한다. 어른이 그 배움의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된다.     


하지만 아직 아이다. 혼자 그걸 소화하기에는 어리다. 나도 아이가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에 주의사항만 얘기했는데 부정적인 감정을 잘 푸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학교폭력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으로 무조건 표현하지 않고 감추라고만 했던 것이다. 아이에게 숨 쉴 구멍은 필요했다. 아이의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후에도 아이는 속상한 일이 있으면 잠자리에서 이야기한다.

“엄마, 옆에 누워봐. 나 할 이야기 있어요.”

이야기를 듣고 별다르게 내가 해 준 건 없다. 속상하게 했다는 친구를 미워하거나 방법을 제시한 적도, 그렇다고 아이의 친구관계를 내가 조정하려고 하진 않았다. 해결해 주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약간의 반응과 함께 들어만 주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아이는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감정을 추슬렀고 그 친구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까지도 했다.   


개운한 마음으로 잠이 든 아이의 모습을 뒤로하고 방문을 닫고 나왔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아이도 자라고 있었다. 그 가운데 엄마의 역할을 조금씩 나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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