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사람들 일대기 3편
그는 시골 마을에서 부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는 ‘땅 좋아하는 양반’으로 알려져 있었다. 돈이 모이면 땅 사는 재미로 살았으므로. 그는 땅을 사서 언젠가는 크게 써먹겠다고 호기롭게 말하곤 했지만, 정작 무슨 일을 하긴 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넓은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서서 제 땅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 모양만 이따금 관찰될 따름이었다.
그는 어쩌다 한번씩 마을에 찾아오는 약장수에게 기가 막히게 좋다는 약을 사서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그게 그의 또 다른 취미였다. 그 약을 손에 들고 허약한 아내에게 내밀 때면 아내는 기가 차서 투덜거리곤 했지만, 그는 퉁명스러운 그 모습마저 재미있었는지 껄껄 웃었다.
부부는 여덟 남매를 키웠다. 아들들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아내는 남편의 어깨를 두드리며 학비와 생활비를 더 마련해달라 독촉했다. 제 어머니의 기대가 애석하게도 아들놈들은 죄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듯 하였으나, 그는 아내의 등쌀에 소를 팔아가며 돈을 마련했고, 그때마다 세 놈을 불러다 앉혀두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수애는 그의 막내딸이었다. 아내는 그가 왜 딸에게 특별히 애정을 쏟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이놈이 배짱 하나는 꼭 나를 닮았다”며 당돌한 막내딸을 유독 귀히 여겼다. 수애는 그런 아버지가 좋았다. 아버지는 딸을 자전거에 태우고 들판을 달렸다.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은 논둑을 지나며 둘은 작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때론 아버지가 몰래 준 동전을 들고 가게에 가서 사먹던 과자의 맛을 수애는 오랫동안 기억했다.
어느 해 겨울, 영도에 사는 장남 집에서 조무사 학원을 다닌다던 수애가 대뜸 찾아와 합격증을 내밀며 대학에 보내달라 했을 때 가족 모두가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그의 반응만큼은 달랐다. 요놈이 맹랑하게도 간호조무사 학원비를 받아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조차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비상금에서 등록금을 턱 떼어서 내주었다. "등록금일랑 걱정 말고 꼭 시험도 붙어 오너라!" 말하면서. 딸이 떠나는 날, 그는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마루에 앉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피웠다. 하, 이 녀석 봐라.
막내딸이 대학을 다니고 있을 무렵, 그의 몸에 갑작스러운 병마가 찾아왔다. 처음엔 그저 가벼운 증상이라 여겼으나, 몹쓸 병은 빠르게 그를 잠식했다. 이름난 의원을 찾아가 보기도 하고, 약장수에게서 약을 사다 먹어도 보았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병이 깊어진 어느 날, 그는 침상에 누워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막내딸을 떠올렸다. ‘이놈, 정말 나를 닮았는데… 내가 그 모습을 다 못 보고 가는구나.’
갑작스레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수애는 큰 소리로 목 놓아 울었다. 장례를 치르던 날, 그는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아버지가 평생 바라본 마을 어귀, 바람에 흔들리는 찻잎과 흐드러진 들꽃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페달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함께 달리던 그 논길 위에 조용히 앉아, 등을 두드리며 노랫가락을 불러주던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을 떠올렸다.
지금도 홀로 지내는 어머니를 보러 고향집에 가끔 찾아갈 때면, 언덕배기에 찻잎과 들꽃이 흔들리는 틈새로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아버지는 바람으로, 노을빛으로 그렇게 여전히 딸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