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인 독서는 어떻게 시작될까? 아마도 스스로의 취향을 선별하게 되면서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내 취향의 시작은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에서 시작됐다. 외판원의 방문판매를 통해 부모님이 사준 이 전집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은 4학년에 올라가던 무렵으로 기억한다. 문고판으로 각색된 고전류로 구성된 전집이기에 이야기에 대한 인지가 시작된 고학년부터 즐겨 읽었던 것 같다.
#취향의 시작, 금성 전집 https://brunch.co.kr/@flatb201/10
#닮은 듯 다른, 금성 전집과 소학관 전집 https://brunch.co.kr/@flatb201/248
#오래된 책 읽기, 금성 전집 권별 요약을 마치며 https://brunch.co.kr/@flatb201/247
#금성 전집-소학관 전집 구성 비교 1-15권(인덱싱) https://brunch.co.kr/@flatb201/245
#금성 전집-소학관 전집 구성 비교 16-30권(인덱싱) https://brunch.co.kr/@flatb201/246
주로 유럽 쪽에 편중돼 있긴 하지만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문학까지 비교적 충실히 구색을 갖춘 삼십 권짜리 전집이다. <가르강튀아>, <아이반호우>, <아큐정전>, <삼총사>, <니벨룽겐의 반지>, <레미제라블> 같은 정통 고전과 <우주전쟁>, <해저 2만 리>, <메트로폴리스> 같은 장르물을 이 전집을 통해 처음 읽었다.
부분적으로 재편했지만 원전인 <올컬러판 세계의 동화 オールカラー版 世界の童話, 小学館> 전체 구성을 따르고 있다.
시대성의 영향으로 재편된 작품들은 주로 정치색이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때문에 당시에는 ‘소련’이었던 러시아권의 작품들은 권선징악형의 평이한 작품들만 수록되었다. <대장 부리바>처럼 정치색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작품들은 제외되었다. 일서 중역임에도 일본색이 그대로 드러나는 <다케토리 모노가타리>, <도련님>, <파도 소리> 같은 다수의 일본 고전들도 제외되었다. 자국의 고전을 다섯 권에 걸쳐 할애한 소학관의 구성은 ‘동양 편’ 한 권으로 축약 분배된다. 그나마도 쓰보이 사카에의 작품만 세 편이나 실린 것은 그녀의 작품들이 범세계적 평화를 주제로 삼기 때문일 것이다.
전체적인 북디자인은 호화로운 장서 분위기를 내는데 주력했다. 당연히 하드커버로 장정된 본책은 화려한 더스트 커버에 싸여 있었다. 중고본들은 대부분 이 호화로운 커버가 유실되거나 손상되어 있다. (그나마도 구할 수 있을 때 이야기지만.) 일렬로 세워두면 유난히 반짝거리던 별색 금박의 책등은 ‘나 전집이야’라며 존재감을 뽐냈다. 권별로 4, 500여 페이지임에도 제본 상태가 꼼꼼했고 진녹색이나 주홍색 가름끈이 달려있다. 고풍스러운 세리프체로 원제가 표기된 내지는 고전적 독서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그러나 금성 전집의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지하는 점은 높은 수준의 삽화이다.
다채롭게 수록된 아름다운 일러스트는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며 박진감 넘치는 독서의 경험을 선사했다. 이 전집에 얼마나 열중했는지 성인이 된 후 원전을 읽을 때 각색으로 인한 편차로 종종 당혹감을 가졌다.
당시의 국내 전집들은 대부분 일본의 기획 전집을 고스란히 베꼈음에도 경제력 수준으로 인한 차이가 확연했다. 원전의 화려한 일러스트를 그대로 카피했지만 인쇄는 조악했고 로컬라이징 된 북디자인은 대부분 촌스러웠다. 금성 전집이 국내 전집 시장에서 고급스러운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북디자인마저 고스란히 가져왔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구색 맞추기식이라도 집집마다 몇 질씩 흔하던 이런 기획 전집들은 한국식 교육열이 한몫했을 경제회복 시대의 유물이다. 현재의 독서 시장을 생각해보면 비용에 아낌없던 출판 환경과 통상적 구매로 이어지게 한 시장이 있었다는 게 새삼 놀랍다.
상상조차 안되던 이국의 문화를 아름다운 삽화로 구현하고, 어린이 수준으로 각색되었지만 비교적 충실히 원문을 요약해 옮겨둔 금성 전집. 스스로 하는 독서의 기쁨을 알려준 책들이다.
@출처/ 금성 칼라명작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금성출판사,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