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 2
시즌 1이 발표된 넷플릭스의 <앤 Anne with an E>는 야심이 또렷하다. 입소문이 먼저 난 이미지 캐스팅과 세트는 외형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깝게 원작을 재현한다.
시대성을 고려한 각색에서 이 야심은 더욱 노골적이다. 공정함을 추구함에도 이런 변주가 무작정 세련되었다 할 수는 없다. 원작의 일상성을 사랑한 독자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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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Anne with an E>의 궁극적인 관심은 몽고메리가 살던 시대에는 감히 말할 수 없던, 혹은 의식조차 할 수 없던 이면의 문제들이다. 원작의 인기 에피소드들을 차곡차곡 가져왔지만 기본 서사는 대대적으로 재편했다.
앤의 몽상은 아동학대로부터 유일한 도피처이며 선택 자체가 요원한 삶에 관한 페미니즘적 함의를 내포한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 지금보다 더 궁금해했을 성적 이슈와 관습의 충돌도 보여준다. 싱크로율 높은 이미지 캐스팅은 확장된 아이디어에 대한 거부감을 상쇄시킨다.
<빨강머리 앤>이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는 사소함으로 폄하되는 여성성의 특질을 예민하게 포착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소년들이 이 작품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몽고메리의 세계는 선의와 사랑스러움, 한껏 형식 차린 낭만이 우선된다. 다이애나로 대표되는 소녀들의 우정은 극강의 판타지에 가깝다. 물론 당시에도 지금도 이런 우정만으로 학창 시절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학교란 잔인하게 축소된 예비 사회인 경우가 더 많으니까. 드라마는 태생적 환경으로 인한 차별 속 소녀들의 차이를 직시한다. 시즌 1 한정 앤에게 집중되어 있긴 해도 소녀들은 각자의 서사를 부여받는다.
원작의 주요 에피소드를 접속사처럼 사용한 연출이 아쉬운 부분도 있다.
앤이라는 캐릭터의 가장 큰 매력은 ‘창의성’에 있다. 관습과 충돌할 만큼 엉뚱한 예술가적 기질 말이다.
‘비올레타’나 ‘케이티’는 그저 외로움의 부산물이 아니다. ‘너는 언제나 금광을 발견해낸다’는 길버트의 말처럼 가상의 친구들은 앤의 작가적 기질을 엿보게 해 준다.
그런데 드라마에선 앤의 상상 속 친구가 병적인 몽상이며 학대당한 과거의 찌꺼기이다. 비참한 환경을 견디게 해 준 앤의 낙관은 심한 감정 기복에 때로는 허언증처럼도 비친다. 어두운 기억의 기습에 안간힘 쓰는 앤을 보면 연민과 분노가 함께 차오른다. 당시 고아의 삶은 훨씬 고단했을 것이고 그것을 재조명하는 것은 복기가 아닌 서사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굳이 앤의 근원적인 매력을 저당 잡혀야 했을까 내내 아쉽다.
유쾌한 각색 중 초경 에피소드는 정말 숨도 못 쉬고 웃으며 보았다.
처음으로 생리를 하게 된 앤은 자신이 죽는 줄 알고 공포에 휩싸인다. 앤을 진정시키려 한 마릴라의 설명은 새로운 공포를 주는데 그건 이 현상을 몇십 년 동안! 매달!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상황이 앤은 밑도 끝도 없이 싫다. 다 싫고, 막 싫고, 진짜 너무 싫다고 절규한다.
앤의 드라마퀸적 성격이 더해진 극강의 짜증과 혐오는 여성이라면 기립박수를 칠 것이다. 여성 누구도 원한 적 없는 신체적 특질이 여전히 대상화된 종용으로 계승되고 있기에.
<앤 Anne with an E>는 보강된 성인 여성들이 특히나 멋있다. 원작처럼 자신의 애정이 앤을 망칠까 두려운 마릴라는 의식적으로 엄격해지려 한다. 자기 검열의 애정은 언제나 조금 더 고단하다. 서프러제트 에피소드는 마릴라의 회한과 애틋함을 보여준다.
근대화에 따라 진보적 의식이 팽배하자 여성들은 참정권과 교육, 직업을 통한 경제적 독립에 눈 떠간다. 뮤즈나 숙녀라는 허울 좋은 포장에서 벗어나 주체로 서기 위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처럼 마릴라 또한 감정이 거세된 순종적 삶을 살아왔다. 심지어 자녀를 가져본 적 없는 나이 든 미혼 여성이기에 자신의 교육 방법이 옳은지 혼란스럽다. 마릴라는 더 나은 부모, 더 나은 여성이 되고자 하는 선망에 이 모임을 받아들인다.
마릴라는 자신은 가질 수 없던 시간을 앤에게 줄 수 있길 바란다.
시작하는 이-마릴라와 진보 어머니 모임은 첫 발자국을 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준다. 시도에도 불구하고 에이번리의 진보적 교육법은 관습 안에서의 유효성만 허용된다.
‘진보 양육에 연민이 포함되지 않는 건 부끄러운 일이죠. It's a shame progressive parenting doesn't include compassion.’ 마릴라의 각성은 이런 부분을 여지없이 지적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던 빨강머리 소녀는 원작에선 결국 현모양처로 타협한다. 소원하던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은 또 다른 고아는 키다리 아저씨 옆 상류층 유한부인을 선택한다. 그녀들의 변심은 지탄받아야 할까?
드라마는 시대적 한계, 스스로의 편견과 시행착오에도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여성들을 그린다. 그 발자국이 쌓여 이 길이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다이애나의 고모 조세핀 배리는 앤의 멘토이자 퀴어 커플로 변주된다.
앤에 대한 조세핀 배리의 애정은 마릴라와 다른 관점에서 진행된다.
또래보다 풍부한 감수성을 가졌지만 경험은 전무한 고아 소녀에게 조세핀 배리는 체험을 선물한다.
공연과 전람회, 도시를 구경시켜 주고 대저택에 초대해 손님방을 내어준다. 조세핀 배리는 앤의 문화적 욕구와 정서적 갈증을 이해하고 있다. 이 점은 환경적인 이유로 마릴라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가장 친한 친구이지만 다이애나가 앤의 몽상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앤이 가장 사랑하는 여성이 마릴라임에도 최초의 멘토가 조세핀 배리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19, 20세기의 중산층, 특히 고학력자들은 평생의 교우관계를 지적인 충만함으로 보는 풍조가 있었다. 대상화이긴 해도 빅토리안 시대에는 영원한 소녀를 이상화된 순수로 규정한 정신적 교제가 유행했다. 다이애나와 앤 사이 우정의 서약도 여기에 기반한다.
이런 대상화를 비틀어 퀴어-특히 나이 든 커플의 결말로 변주한 시도는 정말 멋있다. 앤이 자신의 이름을 가진 조지 엘리엇이 될 수 있길 바라는 조세핀 배리는 잘못된 시대에 먼저 도착한 여성이다. 그러나 러닝타임 때문인지 시즌 1에선 이런 함의들이 축약되었다. 시도의 참신함에 비해 약간은 구색 맞추기로 느껴져 몹시 아쉽다.
드라마가 제기한 문제들은 사실 지금도 견고하다. <앤 Anne with an E>는 이런 문제들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여전한지 깨닫게 한다. 이런 시도는 지속적으로 박수받아야 한다. 더 많이 지지받아 또 다른 방식을 찾아내었으면 한다. 그래서 시대에 합당한, 원작을 초월해도 원작만큼 사랑받는 결과물로 진화하길 바란다.
변해가는 시대에도 여전히 흥미진진한 빨강머리 소녀를 보고 싶으니까.
@출처/
빨강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Anne of Green Gables, Lucy Maud Montgomery, 1908)
에오스클래식 10, 빨강머리 앤 (현대문학, 2011, 번역 김선형)
Anne of Green Gables ; Annotated (Nivant Publishing, 2015)
Anne of Green Gables Special Collect (Batman, 1983)
빨강 머리 앤 전집 (창조사, 1985, 번역 신지식, 일러스트 한인현·이우범)
빨강 머리 앤 전집 (동서문화사, 2002, 번역 김유경, 일러스트 전성보)
Anne with an E (CBC,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