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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Jun 08. 2021

비밀의 화원 2, Flowers we are.


슬픔을 지나 마주한 해피엔딩은 애틋한 울림을 준다. 때론 불안의 막연함에도 다음 걸음을 떼는 낙관이 커다란 응원이 된다. 빗줄기에서 가장 멀지만 끝내 힘을 내어 태양 같은 꽃을 피워내는 알뿌리들처럼 말이다. 크로커스의 황금빛이 아니라도 햇빛과 빗줄기 아래 각자의 자리를 얻는다. 그 풍경이 조화로워 아름답다는 점이 우리가 <비밀의 화원>을 사랑하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비밀의 화원 1, 내일의 장미 https://brunch.co.kr/@flatb201/266

#비밀의 화원 2, Flowers we are. https://brunch.co.kr/@flatb201/268

#비밀의 화원, 빈티지 일러스트 https://brunch.co.kr/@flatb201/269

#비밀의 화원, 빈티지 일러스트 2 https://brunch.co.kr/@flatb201/270




프랜시스 버넷의 정원


..그 뿌리들은 땅속에서 잔뜩 신이 나서 맹렬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햇살이 땅속까지 파고들어 뿌리들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그래서 알뿌리들은 살아있다고 맹렬하게 느꼈다. 


커플링이 어느 쪽이든 <비밀의 화원> 삼총사 모두를 아주 좋아한다. 그래도 이 화원 벤치에 새겨질 첫 번째 이름은 메리임을 의심치 않았다. 헤르미온느와 론이 해리의 타이틀을 대신할 수 없듯 비밀 속 화원을 살려낸 주체는 너무 또렸하니까. 그런데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버넷의 센터에는 콜린이 서더니 엔딩까지 차지한다. <소공자>가 버넷의 차남 비비안에게 이입한 서사라면 <비밀의 화원>은 그녀의 장남 라이오넬에게 헌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 전후 실질적 가장이었던 버넷은 쉬지 않고 작품을 써야 했다. 아동문학 이상의 작가적 목표는 폄하당했고 당연히 슬럼프도 거쳤다. 열 살 연하였던 두 번째 남편과 재혼 시 악의적인 비아냥은 버넷에게 집중됐다. 현재도 흔한 그 반대의 경우는 능력자로 올려치는데 말이다. 실제로는 하찮은 재능에도 배우를 고집하던 연하 남편이 그녀의 돈과 인맥을 뜯어내는데 몰두했다.

우울증으로 발현된 개인사 중 가장 큰 트라우마는 결핵으로 사망한 큰아들 라이오넬이었다. 라이오넬이 사망한 시기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때였는데 버넷은 관 전체를 제비꽃으로 덮었다고 한다. 말년의 버넷은 수순처럼 종교와 신비주의에 심취했고 건강에 예민했다. <소공자>를 통해 비비안의 스타일을 전 유럽에 유행시킨 그녀지만 강령술에 빠져들자 빅토리안식 구닥다리 드레스에 가발까지 치렁치렁 걸치고 다녀 다시 가십에 오르내렸다.

#소공자, 품위의 코스튬 https://brunch.co.kr/@flatb201/87


이 당시 버넷의 관심사는 커리어 후반기 집필에도 반영되어 있다. 비탄에 빠져 유럽 어딘가에 쭈그러져 있던 크레이븐 씨는 꿈속의 목소리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온다. 인도자로서의 릴리는 버넷이 심취했던 강령술의 분위기가 녹아있다. 영원히 살고 싶다는 콜린의 연설도 다소 튀는 에피소드인데 우드하우스씨의 건강염려증 같은 계도적 연설로 시작해 당대의 유행 체조 권장으로 마무리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 이 한 줄을 굳이 챕터로 구성한 것은 죽은 아들을 향한 끝나지 않는 애도의 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메리가 콜린에게 마지막 장을 뺏긴 이유기도 하다.

Shirley Hughes, 1988





타샤 튜더의 정원

버넷 자신은 영성주의로 도피했지만 그녀의 주인공들은 모두 건강한 해피엔딩을 선사받는다. 소망이 녹아든 세계관만큼 애틋한 것이 어디 있는가. 일러스트레이터 타샤 튜더 또한 정원에 몰두했다.

소녀 취향이라기엔 문화사적으로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타샤 튜더의 라이프 스타일은 그녀가 바라는 궁극의 자신이었다. ‘인형의 집 안주인 교체’가 뉴스에 등장할 정도로 팬덤도 높았다. 세계관에 과몰입하는 이들이 그렇듯 그녀는 자신의 삶도 박제했다. 20세기에 떨어진 19세기인이었던 타샤 튜더는 커리어가 성공하자 19세기 풍 정원을 만들어 틀어박혔다. 몽상가 이미지를 어필했지만 현실의 그녀는 탁월한 경영력을 갖춘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인생을 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자식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고 자신의 정원을 유지하기 위한 수입원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스스로를 브랜드화 해 일군 신화 아래는 그림자가 짙어졌다.

Tasha Tudor, 1962


창작자로서의 재능을 물려준 타샤 튜더의 부모는 불화와 편력 끝에 이혼했다. 드라마퀸적 성향의 모친은 자신과 달리 사교계를 달가워하지 않는 딸을 방치한다. 타샤 튜더 또한 여성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인 도피로서의 결혼을 택한다. ‘타샤 튜더 자신에게 청혼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아서 선택한’ 남편은 그녀의 세계에 진저리 내며 떠나버린다. 이혼 후 반작용인지 그녀는 큰아들에게 편애를 쏟아부었다. 본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19세기식 삶에 더 적극적으로 자식들을 이식했다. 특히 두 딸은 구시대 조형물, 살아있는 인형 취급을 받았다. 타샤 튜더의 대상화는 자녀들에게 한정되지 않았다. 그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여성에게도 자신의 취향을 고수했다. 유명한 발언을 뽑아보면 타샤 튜더의 의도와 정반대의 전율이 느껴진다.


..나는 남자가 좋다. 멋진 피조물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하지만 남자처럼 보이는 건 싫다. 여자들이 긴 스커트를 포기한 것은 지대한 실수였다.

..‘보일 듯 말듯한 발목’이란 말을 아는지? 신사들이 그 모습을 흘끗 보고 느낄 전율을 생각해보길.


자녀들 각자 원하는 삶이 있었지만 타샤의 정원은 견고했다. 좋아하는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자녀들마저 목적대로 활용하며 자신의 목표대로 살던 그녀도 세상을 떠났다. 유일하게 자신의 곁에 남아 있던 큰아들에게 모든 유산을 남겼고 유산분쟁이 이어졌다.

부모의 물질적 유산이 자식의 권리라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자식의 삶이 부모의 권리일 수 없는 것처럼. 전자만 취하고 후자는 묵살한 타샤 튜더의 편애는 확실히 악의적으로 비치는 구석이 있다. 완벽하게 세팅된 정원과 인형의 집이 타샤 튜더가 바란 진짜 세계였을 거라 생각하면 그녀가 이룬 성취에도 스산함과 연민이 동시에 든다. 개인의 삶을 비료로 삼는데 서슴지 않은 화원은 예쁜 지옥일 뿐이다. 타샤 튜더의 정원이 좋아지지 않는 이유이다.




정원사

양육을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것처럼 책임 또한 부모에게만 지울 수 없다. 시스템 개선으로 이루어야 할 항목을 근본 없는 모성애로 퉁치려는 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자식을 생산했다는 것만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당당히 훈계하고, 자식을 자산으로서 전시하는 이들을 마주치면 진화에 대해 생각해본다.

부모도, 어른도 결국 자신의 그릇을 들고 전진할 뿐이다. 심지어 우리 각자의 어떤 부분은 이미 실패한 육아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어른의 풍경은 아이들과 달라야 한다.

어린이들은 매일의 날씨를 고르며 주의 깊게 보듬어질 권리가 있다. 만개한 꽃잎으로 인정받는 게 아닌 다음 계절을 위한 수호자로 키워져야 한다. 좋은 정원사는 특별히 사랑하는 꽃이 있다 해도 각자의 자리를 세심히 조율한다. 어떤 세계를 바꿀 고귀하지만 위험한 권능이다.

나무 그늘 아래 새소리를 들으며 버넷이 발견한 것은 고독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끝나지 않은 애도가 어딘가의 소망으로 피어나길 희망했을 것이다. 그렇게 피어난 풍경들의 조화로움이 그녀 정원의 진짜 비밀 아닐까?





@출처/ 

비밀의 화원, 프랜시스 호지스 버넷 (The Secret Garden, Frances Hodgson Burnett, 1911)

The Secret Garden (William Heinemann, 1911, 일러스트 찰스 로빈슨 Charles Robinson)

에오스클래식 20, 비밀의 화원 (현대문학, 2013, 번역 박현주)

걸클래식컬렉션, 비밀의 화원(윌북, 2020, 번역 이경아)


타샤의 말 (윌북, 2017, 번역 공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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