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전 빈티지 하드커버
‘동화’라는 영역을 정립하긴 했어도 안데르센은 자신의 작품을 아동 대상에 한정 짓지 않았다. 초기작들이 채록된 기존 민담을 바탕으로 변주했을 뿐 어린이도 읽을 수 있는 쉽고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판타지가 전 유럽을 사로잡을 수 있던 이유다.
세계대전 이후 옵셋 인쇄의 발달로 대량화가 가속되자 TV 같은 영상 매체의 인기에도 책이라는 장르의 최대 호황기가 찾아온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을, 혹은 어린 시절 책들을 복기하는 세대라면 현재의 SNS들만큼 접근성이 좋았던 독서 환경에서 성장했을 것이다.
여전히 제약은 있었지만 출판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영역이었다. 전설적인 잡지들의 아트 디렉션 확대로 일러스트 영역은 독립적인 분야로 대두되었다. 완성도 높은 일러스트들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자 골든 에이지 시대와는 또 다른 ‘소비품으로서의 책’이 인기를 끌었다. 경제적 호황으로 아동 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이전, 서사는 축약하되 이미지는 확장한 선물용 하드커버들이 대량 발행되었다.
개별 서사의 단행본을 고르다 보니 아래의 작품들은 거의 1980년대 후반의 하드커버들이다.
#눈의 여왕, Kaleidoscope https://brunch.co.kr/@flatb201/285
#눈의 여왕, 일곱 가지 이야기 https://brunch.co.kr/@flatb201/286
#눈의 여왕, 빈티지 일러스트 1 https://brunch.co.kr/@flatb201/287
#눈의 여왕, 빈티지 일러스트 2 https://brunch.co.kr/@flatb201/288
#눈의 여왕, 빈티지 일러스트 3 https://brunch.co.kr/@flatb201/289
#눈의 여왕, 빈티지 일러스트 4 https://brunch.co.kr/@flatb201/290
1980년대 다작 작가인 수잔 제퍼스는 오리지널 스토리보다는 주로 협업 삽화가로 커리어를 이어왔다. <호두까기 인형>처럼 낭만적 분위기의 판타지가 많은데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선물용 단행본이 인기 많았기 때문이다. <히아와사 이야기>, <마이 포니> 같은 미국 고전 아동 문학 삽화를 많이 남겼고 랜덤 하우스, 하퍼 콜린스 같은 대형 출판사 간부로 활동하다 은퇴했다.
수잔 제퍼스의 화풍은 성실하지만 상상력의 설렘은 좀 덜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필모 중 <눈의 여왕>만큼은 그 성실함으로 충족감을 준다. 캐릭터가 특별히 신비롭거나 카리스마 넘치는 것은 아니지만 담채화로 눌러준 꼼꼼한 디테일이 차분함에도 두근거림을 선사한다. 또 인물의 서사에 치중되는 이미지가 아닌 배경 속에 어우러진 인물을 구현했다. 북구의 계절을 관망하며 겔다의 여정을 숨 가쁘게 쫓게 된다.
<호두까기 인형>의 무도회 장면처럼 화려한 몰입감을 주는 것은 공중을 질주하는 ‘눈의 여왕’이다. 거친 눈발을 가르며 썰매를 끄는 말들 아래 부감으로 깔리는 도시 풍경은 역동적인 쾌감을 준다. 역시 1980년대 후반에 발행된 에바 르 갈린 Eva le Gallienne의 일러스트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강렬한 캐릭터와 고채도를 즐겨 사용한 갈린은 활공하는 눈썰매를 올려다보는 시점을 선택해 다른 세계로 진입할 때의 두려움 섞인 쾌감을 유도한다.
스코틀랜드 아동문학가 로빈 로리도 협업 삽화가로 다수의 아동 문학 일러스트를 남겼다. C. S. 루이스의 대표작 <사자와 마녀와 옷장>, 국내에선 지경사 문고로 각인된 이니드 블라이튼 Enid Blyton의 <쌍둥이 시리즈> 삽화로 인기를 얻었다. <안데르센 동화>가 인기를 얻자 <눈의 여왕> 같은 몇몇 작품을 하드 커버 단행본으로 재판했다. 이후 퍼핀 북 커버, 그래픽 노블까지 작업 영역을 확장했다. 민속적 분위기의 역동적인 데생이 모험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판본이다.
역시 이니드 블라이튼 등 창작 아동 문학 삽화로 커리어를 이뤄온 삽화가이다. 1980년대 일러스트의 한 축을 이루는, 종이마저도 아트지를 써서 반딱거리는 알록달록한 파스텔톤 하드커버들을 좋아하진 않는다. 실험적인 시도나 독특한 해석은 아니지만 정확한 데생으로 구현된 동화적 순간들 역시 어린 시절 감수성의 토대가 되어줌을 알려주는 판본이다.
@출처/ 눈의 여왕,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Snedronningen (The Snow Queen), Hans Christian Andersen,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