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은 작품마다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이미지의 언어를 구사했다. 그의 언어는 창작자라면 수순처럼 매혹되고 변주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특히 <눈의 여왕>은 대표작 중에서도 언제나 인기 높은 매혹적인 작품이다. 투명하게 물기 어린 서정적 묘사가 눈보라처럼 휘몰아친다.
#눈의 여왕, Kaleidoscope https://brunch.co.kr/@flatb201/285
#눈의 여왕, 일곱 가지 이야기 https://brunch.co.kr/@flatb201/286
#눈의 여왕, 빈티지 일러스트 1 https://brunch.co.kr/@flatb201/287
#눈의 여왕, 빈티지 일러스트 2 https://brunch.co.kr/@flatb201/288
#눈의 여왕, 빈티지 일러스트 3 https://brunch.co.kr/@flatb201/289
#눈의 여왕, 빈티지 일러스트 4 https://brunch.co.kr/@flatb201/290
(직접 인용 외의 문장은 원문이 아닌 요약입니다.)
First Story: Which treats of the mirror and its fragment.
조심하라! 곧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서진 거울 조각은 이전보다 큰 불행을 가져왔다.
어느 사악한 트롤이 흉한 것들을 극대화시키는 거울을 막 완성했다. 자신의 성취에 도취한 트롤은 도전적으로 천상을 향한다. 신이 관여했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트롤은 거울을 떨어트린다. 수천수억 개로 깨진 거울 파편은 온 세상에 눈송이처럼 날리며 분쟁과 분노를 조성한다.
휘몰아치는 수사가 무색하게도 <눈의 여왕> 또한 기독교 근본주의와 금욕에 바탕 두고 있다. 안데르센의 여타 작품에서도 꾸준했던 이 미덕들은 고난을 감내하는 겔다, 그녀로 인해 성찰하는 카이의 몫이다. 그러나 이들의 건너편에 선 ‘눈의 여왕’은 모호하긴 해도 악마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눈의 여왕이 가지는 반기독교적 특징에는 <인어공주>의 훈계나 <분홍신>의 악의가 없다. 제약 없는 당당함은 오히려 자유로운 쾌감을 준다.
북구의 민담을 바탕으로 옛날이야기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Once upon a time이 아닌 머리말로 시작해 차별화된 자신감을 드러낸다.
Second Story; Little Boy and Little Girl
빽빽한 대도시에 사는 카이와 겔다에겐 정원이 없다. 남매 같은 소년과 소녀는 이웃한 두 집에서 내놓은 장미 화분이 작은 덩굴을 이루자 그 아래에서 시간을 보낸다. 꿀벌이 붕붕 대는 아름다운 여름을 지나 겨울이 닿기까지 내내.
“아야! 방금 뭔가 내 가슴을 찔렀어! 눈에도 뭐가 들어갔나 봐!”
괴로워하는 카이에게 박힌 것은 트롤이 깨트린 거울의 파편이었다. 아주 아주 작은 조각이지만 본성을 잃지 않은 거울은 카이를 바꿔놓는다. 다정함이 사라진 자리를 냉소와 폭력적인 태도가 채웠다. 이제 그는 겔다와 어울리지 않고 관심 두는 놀이마저 바뀌었다. 확대경으로 눈송이를 바라보던 그가 외쳤다.
눈송이는 훨씬 더 크게 보였고, 아름다운 꽃이나 모서리가 열 개인 별 같았다. 정말 예뻤다.
“얼마나 근사한지 알겠어? 진짜 꽃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흠집이라고는 전혀 없어. 녹지만 않는다면 가장 완벽할 거야!”
그는 더 이상 여름의 장미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무자비하게 정제된 종류였다. 눈발이 거세지던 날, 광장의 무리 앞에 하얗게 빛나는 거대한 썰매가 등장한다. 카이는 자신의 썰매를 그 거대한 썰매에 연결했다. 은빛 썰매는 카이를 아랑곳 않고 도시 밖으로 내달린다. 소년의 작은 썰매는 큰 썰매에 연결되어 있었고, 바람처럼 함께 날았다. 카이는 겁에 질려 기도했지만 기억나는 것이라곤 구구단뿐이었다.
썰매를 몰던 사람이 일어섰다. 그 사람은 여자였고, 두르고 있던 하얀 모피와 모자는 온전히 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큰 키에 호리호리하고 눈부신 그녀는 바로 눈의 여왕이었다. 여왕이 입 맞추자 카이의 냉기가 가신다. 카이는 긴 긴 겨울밤 내내 달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고 낮에는 그녀의 발치에서 잠들었다.
안데르센이 활동하던 시기는 근대성의 혼란이 휘몰아친 시대였다. 그의 다른 대표작 <그림 없는 그림책>에는 에피소드마다 이런 혼란과 호기심이 잘 드러나 있다. 근대적 사고의 발현, 비약적 산업 아래 지리적 한계도 상쇄되었다. 철학적 호기심들은 이내 지리적 탐구심으로 확장된다. 원문에 표기된 ‘확대경’, ‘구구단’은 20세기 주요 관심사였던 과학적 사고를 통한 탐구를 의미한다.
#호두까기 인형, 어젯밤의 신기루 https://brunch.co.kr/@flatb201/116
Third Story; The Enchanted Flower Garden
카이의 실종으로 슬픔에 빠져있던 겔다는 봄이 되자 집을 나선다. 값진 빨간 구두를 강에게 던지며 그의 행방을 물어본다. 카이의 행방을 알지 못하는 강은 구두를 밀어내야 했지만 조각배에 올라탄 겔다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배가 도착한 곳은 나무 병정 둘이 보초를 선 조그만 집 앞이었다. 예쁜 꽃이 가득 그려진 모자를 쓴 노파에게도 카이의 행방을 물어본다. 노파는 겔다를 위로하며 잠시 쉬길 권한다. 겔다가 꽃들이 풀어놓은 제각각의 사연을 듣는 동안 노파는 금으로 된 빗으로 머리를 빗겨준다. 빗질에 금빛으로 반짝이며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겔다의 곱슬머리는 활짝 핀 장미 같았다.
겔다가 마음에 든 노파는 머리를 빗겨 카이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 마법을 쓸 수 있는 노파는 가장 아름다운 꽃일 장미도 숨긴다. 겔다는 더없이 아름다운 마법의 화원에 느긋하게 취한다.
어느 날 온갖 꽃이 그려진 노파의 모자를 바라보던 겔다는 깨닫는다.
“여긴 왜 장미가 없나요?”
노파는 모자의 장미를 지우는 것을 잊은 것이다. 겔다는 신발도 없이 맨발로 화원을 뛰쳐나온다. 계절은 이미 가을이다.
카이와 겔다의 장미는 기독교 이상주의를 상징한다. 과학적 사고에 사로잡힌 카이는 성찰의 관념을 깨닫고서야 다시 장미를 얻을 수 있다. 겔다 역시 고난을 겪어내기까지 세속적인 편리를 상징하는 ‘신발’을 종종 잃어버린 채 맨발로 나아가게 된다.
Fourth Story; The Prince and The Princess
“까악! 까악! 안녕! 까악!”
까마귀는 어린 소녀에게 친절하게 이 넓은 세상에서 홀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겔다가 우연히 만난 까마귀는 함께 카이의 행방을 추측한다. 까마귀가 살고 있는 왕국의 공주님은 재미있는 반려자를 찾겠다고 결심했다. 수많은 도전자들 가운데 멋진 부츠를 신고 당당히 입성한 젊은이는 카이와 유사했다. 까마귀의 도움으로 겔다는 궁전의 침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잠든 그는 젊고 아름다웠지만 갈색 목덜미 외에는 카이와 닮은 곳이 없었다. 잠에서 깬 공주는 겔다의 사연을 듣고 안타까워한다.
공주는 비단과 벨벳 옷을 입힌 겔다에게 작지만 멋진 마차와 부츠 한 켤레, 아름다운 털토시까지 선물한다. 공주 부부의 배웅을 받으며 겔다는 다시 길을 나선다. 온갖 소문을 물어다 주고 친절함으로 작위를 얻은 까마귀는 이제 궁 안에서 살 것이다.
안데르센은 유사 모험 서사를 선택하되 역시 캐릭터들의 롤을 비튼다. 이 에피소드의 공주는 <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 속 트롤 공주 같은 빌런이나 경쟁자가 아닌 조력자가 되어준다.
Fifth Story; The Little Robber Girl
“금이다! 금이야!”
“호두 먹고 살찐 아이처럼 포동포동하구나!”
“저 애가 나랑 놀아주면 좋겠어!” 강도 소녀가 말했다.
“저 애의 토시 Muff랑 예쁜 드레스 Pretty Frock를 가질 거야. 그리고 매일 내 곁에서 재워야지.”
금빛으로 빛나며 어두운 숲을 가로지르던 겔다의 마차는 강도 떼들에게 포위된다. 강도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사나운 눈빛의 어린 소녀였다. 아낌없이 예쁨 받는 강도의 딸인 듯한 그녀는 겔다가 마음에 쏙 든다. 그녀의 예쁜 옷을 탐내고 그녀를 꼭 붙들어둔다. 겔다는 강도 소녀에게 카이에 관한 사연을 이야기한다. 그녀들 곁의 산비둘기는 카이가 있으리라 추정되는 눈의 여왕의 궁전에 대해 알려준다.
밤새 위협적으로 굴던 강도 소녀는 날이 밝자 그녀를 도망치게 해 준다. 토시만큼은 너무 예뻐 돌려주지 않았지만 겔다를 따뜻하게 입혀 순록과 함께 풀어준다. 기대로 설레는 겔다와 자유로워져 기쁜 순록은 얼음의 땅을 향해 내달린다.
인정과 결핍에 관한 강박에 시달렸던 안데르센은 애정의 대상도 가리지 않았다. 추측되는 그의 양성애는 성적 지향점이라기보다 결핍으로 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강도 소녀와의 동침은 동화의 관점에서 여상하지만 성인이 관점에선 얼핏 사적인 욕망을 엿본 느낌을 준다. 토시나 드레스 같은 세속적인 아름다움은 장미와 같은 가치들과 대비된 시각적 분류로 캐릭터의 역할을 드러내고 있다.
Sixth Story; The Lapp Woman and The Finn Woman
겔다와 순록은 고래 기름등잔에 생선을 굽고 있던 늙은 라플란드 여인과 마주친다. 노파는 지친 그들을 동정하며 눈의 여왕이 푸른 불꽃을 쏘아 올리는 핀마르크를 찾으라고 알려준다. 겔다와 순록은 다시 휘황한 북극광 아래를 가로지른다.
핀마르크에 도착해 마주친 더 늙은 핀란드 여인은 겔다와 순록을 쉬게 해 준다.
“당신은 무척 현명한 분이죠.” 순록이 말했다
“실 한 가닥으로 온 세상의 바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걸 알아요.”
둘의 간절한 애원에 핀란드 여인은 카이의 거처를 확인해준다. 그녀는 거울 파편에 관해 회의적이었지만 순록에게 겔다를 붉은 덤불까지 데려가라고 일러준다.
순록은 붉은 열매가 가득 달린 커다란 덤불에 닿을 때까지 달렸다.
겔다를 내려놓고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반짝이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순록과 헤어진 겔다는 신발도 장갑도 없이 다시 달린다. 눈의 여왕이 뿌려둔 살아있는 눈송이를 헤치며.
북구 신화의 주요 초월적 조력자인 ‘네 방향의 바람’을 통해 이 노파들에게 주술적 힘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 속 노파들과 달리 라플란드와 핀란드의 노파는 겔다에게 줄 황금 사과나 황금 물레, 황금 빗 같은 것은 없다. 그녀들이 보태는 것은 아주 현실적인 조언-상황의 부연이나 지리적 힌트들이다.
Seventh Story; What happend in the snow queen palace and afterwards.
성은 눈보라로 지은 것이었고, 창문과 문은 살을 에는 듯 찬 바람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카이는 퍼즐 조각을 배열해 글자들을 만들 수 있었지만, 정말로 원하는 단 하나의 단어는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눈의 여왕이 말했다.
“그걸 맞춰 낸다면 너는 너 자신의 주인이 되겠지. 네게 온 세상과 스케이트 한 벌을 주마.”
카이는 조그만 중국식 퍼즐을 끝없이 이리저리 맞추고 있었다. 그 얼음 퍼즐은 그의 마음이다. 떠오르지 않지만 중요하게 여겨지는 무언가를 표현하려 애쓴다. 그러나 카이에게 박힌 거울 파편이 모든 시도를 좌절시켰다. 눈의 여왕은 레몬과 포도를 위해 남쪽의 기후를 살펴보러 떠나고 카이는 좀 더 얼어붙는다. 그때 살아있는 눈송이와 바람의 문을 거슬러 낸 겔다가 뛰어들어왔다. 겔다는 미동도 없는 카이를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얼음이 된 거울 파편마저 녹아내렸고 마침내 카이도 겔다를 알아보았다. 둘이 서로에게 키스하자 카이의 본성이 혈색과 함께 돌아왔다.
카이가 얼음 조각을 맞춰내자 어딘가에 있을 눈의 여왕으로부터 그를 풀어주라는 얼음 글자가 새겨진다. 순록, 핀란드 여인과 라플란드 여인, 강도 소녀, 왕궁과 까마귀의 여정을 거슬러 둘은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다. 그들의 장미 덩굴 아래로. 여름이 왔다. 따뜻하고 찬란한 여름이었다.
카이의 중국 퍼즐은 칠교 七巧를 묘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유럽에서 장기간 폭풍 유행된 시누아즈리 Chinoiserie의 영향이다. <눈의 여왕>에는 여행을 좋아했던 안데르센의 지리적 호기심과 이국적 관심이 작품 전반에 녹아있다. 이런 여정에 관한 탐구는 형식미로도 시도되는데 카이와 겔다가 여정을 되짚어가는 순환 서사로 활용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거쳐온 모든 과정을 되짚어 여름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예전의 카이와 겔다가 아니다. 그들이 돌아간 ‘여름’은 단지 집에 돌아간 것이 아닌 온전한 이상적 가치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듯하다.
@출처/
Snedronningen (The Snow Queen), Hans Christian Andersen, 1844
안데르센 동화집; 눈의 여왕 (현대문학, 2011, 번역 이나경)
Stories from Hans Christian Andersen; The Snow Queen, 일러스트 에드먼드 뒬락 Edmond Dulac, 1911
Hans Andersen's fairy tales; The Snow Queen, 일러스트 윌리엄 히스 로빈슨 William Heath Robinson, 1913
커버 이미지/ Sprookjes van Hans Andersen, 일러스트 리에 크래머 Rie Cr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