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매일은 기억해야 할 많은 것들을 지우며 스쳐 지난다. 그러나 어떤 순간은 끝끝내 우리를 붙들어둔다. 찌릿한 불꽃이건 흩어져 미약한 잔향이건 그것들은 이미 읽은 예언이다. 오늘 더없이 완전한 눈이 날리고 있고 내일도 눈이 올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후의 많은 날들이 그러할 것도.
#눈의 여왕, Kaleidoscope https://brunch.co.kr/@flatb201/285
#눈의 여왕, 일곱 가지 이야기 https://brunch.co.kr/@flatb201/286
#눈의 여왕, 빈티지 일러스트 1 https://brunch.co.kr/@flatb201/287
#눈의 여왕, 빈티지 일러스트 2 https://brunch.co.kr/@flatb201/288
#눈의 여왕, 빈티지 일러스트 3 https://brunch.co.kr/@flatb201/289
#눈의 여왕, 빈티지 일러스트 4 https://brunch.co.kr/@flatb201/290
안데르센은 <눈의 여왕>을 순수한 쾌감으로 써나갔다고 한다. 본격적인 오리지널 스토리를 다져가던 전성기의 작품이다. 쉽게 읽히면서도 투명하게 물기 어린 서정적 묘사가 눈보라처럼 휘몰아친다. 서사를 이끄는 겔다가 떠난 모험은 <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이 중첩되지만 그 여정을 채우는 메타포들은 전형성에서 조금씩 비켜서 있다. 고립된 연인의 하룻밤을 사는 것이 아닌 그의 기억을 지워내는 황금 빗, 익숙한 조력자의 형태로 등장하지만 그 자신의 영역으로 존재하는 노파들, 선량하지만 무용한 꽃들과 새들, 간질간질 예쁜 것을 사랑하는 무뢰한이 등장한다.
#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 마음의 바람이 향하는 곳 https://brunch.co.kr/@flatb201/34
무엇보다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등장도 퇴장도 모호한 그녀 ‘눈의 여왕’이다.
작품 전반부와 후반부에 잠깐 등장할 뿐이지만 눈의 여왕은 내내 이 여정을 장악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안데르센이 호감을 품고 있던 유럽의 뮤즈 ‘예니 린드’가 모델이지만 캐릭터가 함의하는 강렬함에 더 매혹된다. 안데르센의 여타 작품처럼 의도치 않게 여성성의 당위를 빛낸다.
#나이팅게일, 뜻밖의 선물 https://brunch.co.kr/@flatb201/138
그녀는 충분히 오만해도 좋을 정도로 당당하고 자유롭다. 그녀의 자유로움은 연인을 위해 물거품이나 돼서야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온 세상’에 ‘스케이트 한 벌’까지 얹어 하사할 권위가 있다. 그녀의 냉기는 당연히 성냥개비 따위에 위로받을 것이 아니다. 그녀는 삶의 비밀을 깨우친 이들을 다시 여름으로 돌려보내 주는 관대함을 가졌다.
우리가 잃은 줄도 모른 채 그리워하고 곱씹는 관념처럼 그녀는 너무 멀어 간절하다. 어떤 부연도 없이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내달리는 그녀의 썰매를 독자 또한 카이와 겔다처럼 뒤쫓게 된다.
안데르센은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서사 안에서 순환하는 형식미를 시도했다. 순진한 여름을 보내던 소년과 소녀는 겨울을 거쳐 다시 여름에 도착한다. 이후의 여름 언젠가 예정될 로맨스이다. 또한 둘 사이의 ‘영원’을 깨우쳐 준 불가항력적 존재에 관한 미혹과 선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창작자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굴절과 변주로 생명력을 다져가는 만화경 같은 매력의 작품이다.
우리의 삶, 로맨스, 기억해야 할 무엇, 아니 간직할 순 없어도 잊지 못할 모든 순간은 그렇게 파생된다. 사소한 조각들이 스펙트럼 안을 끊임없이 구르다 만들어내는 결정 같은 이미지로 간직된다. 심장을 찔려 남겨진 상흔이 아닌, 첫 번째로 속눈썹에 내려앉은 눈송이의 흐릿함에 사로잡혀 영원을 깨닫기도 한다. 확대경으로 들여다볼 수야 있겠지만 딱 한 번의 눈 깜박임으로도 녹아버릴 그래서 더욱 간절한 무한이다. 그 깨달음을 어떤 명칭으로 부르던 이 순간이 벌써 그리워질 것임을 알고 있다.
매번 날리는 눈에 설레고 알 수 없는 애틋함을 실어보는 이유기도 할 것이다.
@출처/ 눈의 여왕,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Snedronningen (The Snow Queen), Hans Christian Andersen,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