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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차언니 Aug 31. 2020

우리는 맘충도 빠충도 아닙니다

사람을 벌레로 지칭하지 않는 사회를 꿈꾸며

- 반백수 1호_육아휴직 아빠
- 반백수 2호_전업주부 엄마
- 반백수 3호_만 1세 아기


아이와 함께 하는 가정은 외출에 앞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아이가 먹고 자고 배변하는 시간을 체크해야 하며, 이를 고려하여 상당수의 물품을 챙겨야 한다. 크고 작은 이유를 기반으로 가방을 채워 나가다 보면 금세 빵빵해진 배낭을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반드시 추가하면 좋은 옵션이 있다. 바로 맘충이 되지 않겠다는 '개념'이다. 반대로 휴대를 포기하는 편이 나은 옵션도 있는데, 남들의 오지랖에 대항해 발끈하고 욱하는 '성깔'이다.


대한민국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경험 중인 30대 여성. 2호는 앞서 언급한 이야기를 우스개 삼아 할 정도로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에 익숙해져 있는 편이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늘 직면하는 아주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막 본격적으로 전업 육아에 도전하기 시작한 1호에게는 세상의 이런 면면이 조금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섭섭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자동차의 정기 점검을 위해 반백수 패밀리가 모두 함께 외출해야 했던 어느 날이었다. 모처럼 만에 바깥공기를 접하게 된 그들은 마냥 들떠 있었다. 차의 컨디션에 따라 밖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준비를 아주 단단히 해서 집을 나섰다. 차를 맡기고 처음으로 향한 곳은 정비소 인근의 공원. 평소 집 근처의 작은 놀이터나 사방이 막혀 있는 쇼핑몰, 대형마트 외에 넓은 야외에는 자주 나가지 못했기에 3호에게 잠시나마 자연의 풍요로움을 선사하고 싶었다. 비록 겨울이기는 하지만 호수와 나무, 새 등을 구경할 기회였다. 그러나 설렘은 짧고, 씁쓸함은 길었다. 어느 할아버지가 남기고 간 한 마디 때문이었다.(이 때는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이었다.)


아이고, 이렇게 미세먼지 많은 날에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 어떡해?


1호와 2호는 순식간에 나쁜 부모가 되었다. 변명하거나 화를 낼 새도 없이 발언의 주체는 멀찌감치 종적을 감추었다. 누구보다 미세먼지에 민감하게 대응해왔던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 물거품이 된 기분이었다. '나온 김에 아주 잠시였을 뿐인데...'라는 대답이 목구멍 언저리에 맴돌았다. 그동안 불특정 다수에게 들었던 수많은 조언이 한꺼번에 머리를 스쳐 지나가 쓴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1호의 안색은 한층 더 심각해 보였다. 모르는 이가 스치듯 내뱉은 이야기는 그의 가슴에 작은 가시처럼 박혀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존재가 되었으리라.


허탈한 1호의 멍때림


기운이 빠진 반백수 패밀리는 서둘러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와 마주했다. 제 발로 돌아다니지 못하고 계속 속박된 상태로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3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음료가 시시각각 식어간다는 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짜증 어린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던 1호는 3호를 번쩍 안아 들고 카페 밖으로 나가 수문장을 자처했다. 문밖에서 서성이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2호의 입속이 한층 텁텁해졌다. 맘충의 연관어로 빠충이라는 단어가 있다는데, 적어도 1호는 그날 빠충이라는 소리를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닌데도 하루를 온통 송사에 휘말리며 보낸 것 같은 고단함이 몰려다.


카페의 분위기가 못마땅했던 3호


가임여성 1명당 출산율이 1명도 채 되지 않는 시대. 국가는 여러 제도로 출산을 권장하나, 그것이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까지 바꿔 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낮은 출산율 인적 자원의 고갈로 귀결되는 중대한 사회 문제라고 말들 하지만, 오늘 처음 만나는 아이와 부모를 배려할 여유까지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는 날 선 시선들에 적응해야만 한다. 이런 사회 풍조를 하루 이틀 겪어온 것이 아니므로 어쩌면 충분히 적응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도 지나고 보니 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이는 아니다. 하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를 만나 이 땅에 태어난 죄로 조그맣고 순수한 아이의 존재 자체가 잠재적 혐오의 대상이 되고, 이유 없이 배척당하는 것은 결코 당하지 않다. 배타의 대상이 되어버린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라면 누구든 마음이 아플 것이다. 임산부 배려석이나 맘충, 빠충에 대한 논란은 탄식 한 번으로 지나칠 수 있지만 '노 키즈 존(NO KIDS ZONE)' 논란에는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고 해야 할까?


제주에는 '노 배드 패런츠 존(NO BAD PARENTS ZONE)'임을 내세우는 카페가 있다. 아이에게 충분한 주의를 시킬 수 없는 부모는 입장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뉴스에서 이 이야기를 접한 반백수 부부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루 동안 1호에게 생소하게 다가왔던 서운함과 고단함이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이러한 시도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벌레로 만들거나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신 부드러운 표현으로 하는 완곡한 경고라니! 어쩌면 이것야말로 배려의 시작이고 상호 간 이해의 첫걸음인지도 모르겠다.


제주도의 카페 '대수길다방' ⓒ한국일보


3호의 기저귀 가방을 짊어진 1호와 2호는 오늘도 '개념'을 챙기고 '성깔'을 포기한 채 집을 나선다. 어쩌면 사소하기도 한 이 노력을 '그까짓 것 당연하다.'고 이야기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의 작은 배려에 감사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로운 사회를, 내일은 마주 하고 싶다. 더불어, 잘 알지 못하는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 사회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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