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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만들어도 매일 다른 맛, 에그 샌드위치&푸딩

9/15 토요일 피크닉 테이블

by 은재

밤 11시가 되고 <제리 스프링어 쇼>가 시작될 것이다. 전자레인지에 팝콘을 넣고 다이어트 콜라 두 캔을 땄다. 빌은 냉동된 치즈버거 아홉 개를 들고 왔다. 내 것 셋, 자기 것 셋, 레바 것 셋.

_호프 자런,『랩걸 Lab Girl: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김희정 역, 알마)



눈치 없게도 추석이 금요일에 걸려 이번 연휴는 평소보다 하루가 짧았다. 대신 보상이라도 하듯 사흘 내내 하늘이 마음 아플 정도로 화창했다. 어디 나가지 않으면 죄라도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럴 때 금방 불러내어 같이 소풍 갈 수 있는 동네 친구가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동네 친구. 용호동부터 스물여섯 해 넘게 부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요즘은 동네 친구가 하늘의 별보다 찾기 힘들다. 대부분 취업을 준비하거나, 다른 지역에서 직장을 잡았거나 외국에 살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친구를 사귄다고 해도 어릴 적과는 달라서 줄 수 있는 마음의 총량이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셈을 하고 모자라면 섭섭했다.


생각해보면 내 이십 대의 삶은 내 선배나 우리 부모님들의 것과는 달라서, 무엇이든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는 자유와 도전의 기회로 가득하다. 자연히 또래들은 새로운 지역, 다양한 직업에 도전했고, 나와 같이 한 동네에 머무르는 이들이 손에 꼽힐 정도. 똑같은 이별이라도 남는 사람의 마음과 떠나는 사람의 마음은 천지차이여서, 나는 종종 친구들이 그립고 쓸쓸했다.


금요일 아홉 시, 미리 만드는 달콤한 계란 푸딩

재료: 계란 3개(전체 1개 + 노른자 2개), 설탕 45g, 우유 230cc, 바닐라액

1.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30초 데우거나 냄비에서 기포가 생길 때까지만 덥히고, 계란은 휘퍼로 잘 풀어주기

3. 데운 우유에 설탕을 풀어 완전히 녹이고, 바닐라 액을 취향껏 첨가하기.

4. 설탕을 녹인 우유에 풀어진 계란을 넣고 완전히 섞이되 거품이 생기지 않도록 천천히 저어주기

5. 푸딩 반죽을 용기에 넣고 랩으로 입구를 막은 뒤, 찜통에 용기의 2/3이 잠길 높이의 물을 채우고 15분간 찌기

6. 잘 익은 푸딩을 꺼내어 냉장고나 시원한 실온에 식힌 뒤 메이플 시럽을 뿌려 완성.


토요일 오전, 가족들 점심까지 해결하는 에그 샌드위치 만들기

재료: 삶은 계란 6개, 마요네즈 2큰술, 소금 한 꼬집, 식빵 4개

1. 삶은 계란을 분리해 노른자는 잘게 다지고 흰자는 듬성듬성 썬 뒤 다시 합하여 소금과 마요네즈로 간 하기

2. 실온에 둔 버터를 식빵 한 면에 골고루 바른 뒤, 1번 계란 속을 듬뿍 올린 뒤 나머지 식빵을 겹치기

3. 딱딱한 식빵 모서리를 잘라내고 포장하여 완성

2014년 개원한 부산시민공원은 내가 광안리, 해운대, 용궁사 다음으로 자주 찾는 명소로 한 때 군부대가 있었던 만큼 넓은 부지와 잘 조망된 풍경이 일품인 데다, 집에서 한 정거장 거리라는 것! 사실 한국의 1인당 도시공원 조성 면적은 2010년부터 꾸준히 증가해 왔고, 녹색도시 정책은 조금씩 우리의 여가 생활을 바꾸고 있다. 소풍, 축제, 체육 프로그램 등 지역주민의 여가 생활 수준을 높이는데 도시공원이 한몫하는 셈. 뉴욕의 센트럴파크, 파리의 마르스 광장도 빼어나지만 내 집 바로 옆 시민공원이 역시 최고라 할 수 있겠지.



토요일 한시, 피크닉 바스켓에 넣을 것들

이마트에서 오천 원에 구입한 보온 피크닉 가방에 샌드위치, 푸딩 그리고 추석 때 남은 각종 과일과 커피를 챙겼다. 종이컵과 테이블 매트, 냅킨, 수저까지 챙기면 완벽하다. 2인용 샌드위치의 또 다른 주인인 동네 친구 H는 부모님을 도와 전포동 유명 칼국수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내가 중학교 때 작은 건물에서 음식점을 개업하시던 친구의 아버지. 이제는 카페거리의 몫 좋고 널찍한 1층 건물로 가게를 확장했을 뿐 아니라 진구 전포동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찾아오는 인기 가게로 탈바꿈했다.


화려한 외관이나 말 뿐인 온라인 마케팅 하나 없이 손꼽히는 휴무일에 밤늦은 손님도 맞이하는 성실함과 손 맛으로 승부하는 곳. 그런 부모님을 도와 본인도 매일 가게에 출근해 가업을 이어간다(아직 주방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하지만). 이십 대, 읽는 것도 아는 것도 많지만 북적이는 손님들 때문에 자기만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내 친구.


가끔 독립하고 싶지 않아? 멀리 떠나는 여행이나 새로운 일 같은 것 말이야. H는 종이로 싼 에그 샌드위치를 뜯으면서 가끔 그럴 때도 있지, 했다. 그것도 좋지만, 가족들하고 여기서 계속 열심히 즐겁게 살고 싶다고. 같은 자리에서 새로운 결과를 성취하고, 다양한 모임에서 친구를 사귀며 안목을 넓히는 게 좋다고.


토요일 세시, 해가 기울어지면 남은 음식과 쓰레기를 정리해야

식어빠진 맥주와 커피를 꿀꺽 다 마셔버리고, 남은 음식과 쓰레기를 깨끗하게 정리했다. 엉덩이에 묻은 풀을 탈탈 털고 씩씩하게 다시 집으로 가는 길. 매일 걷는 시민 공원, 매번 소풍 갈 때마다 싸는 에그 샌드위치, 반평생을 걸었던 바로 그 집 가는 길과 그 위에 우리. 지금 있는 자리에서 매일 애쓰고 성취하고 성장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공원이든 식문화든 이 도시가 번창하는 것 아닐까? 가끔은 이렇게 키 큰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소풍을 떠나도 좋겠지. 내일도 모레도 문제없을 거야.


at the table

- H (26, 동네 친구, 손칼국수 음식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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