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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무너져내려 바닥을 찍었다.


퇴사한 날 밤 11시 30분 카톡 하나가 왔다. A 상사로부터 카톡이 온 것이다.

"컴퓨터 비밀번호 어떻게 돼요?"

밤 11시 30분에 굳이 카톡을 남길 것인가 싶었고, 평소에도 A 상사는 본인이 생각나면 퇴근 이후에도 카톡을 줄곧 남겼기에 이렇게 답변했다.

"컴퓨터 모니터 아래 종이에 비밀번호 적어두었어요. 그리고 퇴근시간 이후에 웬만해서 카톡 안 보내셨으면 합니다. 저번에 동료 D씨도 퇴근시간 이후에 A 상사한테 연락은 자제해 달라고 했잖아요."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에게도 퇴근시간 이후 카톡을 보낸 적이 여러 번 있었고 나는 퇴사하는 입장이기에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당신이 평소 업무를 안 챙겼잖아요. 저한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네요."

이 카톡을 보는 순간 나는 A 상사 연락처를 차단을 했다. '앞, 뒤가 다르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렇구나. 그리고 이 사람이랑은 앞으로 연락해 봤자 나만 손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를 했지만 A상사, B상사, C상사가 내게 했던 행동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랐다.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이 회사를 입사하면서 시댁과 처가댁에 "걱정 안 끼쳐드리고 열심히 잘 다녀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말을 2달도 지키지 못한 내가 한심스러웠다. 비참했다. 죄송했다. 그리고 사라지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해선 안되지만 집에 어디서 목을 매달아야 할지 어떻게 죽어야 할지 생각했다. 침대에만 계속 있었고 이런 상황이 싫고 피하고 싶어 계속 잠만 잤다. 잠이 오지 않아도 눈을 감았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다. 부모님이 걱정을 하셨고 친척누나가 일하고 있는 대학병원에 가보자고 하셨다. 나는 대학병원이 내가 치료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라 생각하였고 여기서 치료하지 못하면 내 삶은 끝난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지막 심정으로 대학병원에 갔고 친척누나가 예약해 준 덕분에 빠른 시일 내 갈 수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첫 진료 때 의사 선생님이랑 상담을 했는데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 내가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자주 든다고 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이 생각이 강하게 들 경우 입원을 해야 된다고 하셨다. 나는 아직 실행까지 옮길 단계는 아니었고 계획 정도만 세우는 단계였다. 나는 다음에 안 좋은 생각이 강하게 들면 바로 병원으로 연락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약처방을 해주셨는데 전보다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잡기 위한 약의 용량이 늘어난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일단 살아야겠다. 여기가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에 처방해 주신 약을 매일 꾸준히 복용하였다.



내가 마지막 회사를 퇴사 후 느낀 감정은 살면서 최고로 우울했고 마음은 무너져내려 바닥을 찍었다고 생각했다. 내겐 앞으로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사람들이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에 사로잡혀있었다. 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 2명이 저녁을 먹자고 연락이 왔다. 나는 나가기 싫었지만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고자 집을 나섰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내가 사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고 구체적으로 계획도 세웠다고 말하자 친구들은 안타까워했다. 그리곤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면서 네가 가면 나도 같이 간다, 집에 있으면 우울할 수 있으니까 같이 운동이라도 하자라고 이야기해 주었는데 말이라도 너무나 고마웠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나를 위해, 마음이 무너진 나를 위해 친구들은 옆에서 끝까지 있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옆에서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준 아내가 있었다. 물론 아내도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걱정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우울증 관련된 도서는 죄다 구매해서 읽어보고 식단도 인스턴트식품보다는 직접 고영양식단으로 만들어 차려주려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많은 말로 상처를 주었지만 아내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내와 친구들, 가족들로부터 힘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것도 없더라도 나라는 존재를 고마워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다시 한번 살아봐야겠다는 희망이 들기 시작했다.



약을 꾸준히 먹고 긍정적으로 조금씩 생각이 바뀌자 퇴사한 지 1달부터는 침대에서 조금씩 벗어 나올 수 있었다. 먼저 이불을 정리하고 에너지가 남으면 집도 청소했다. 가끔은 공원에 나가 걸으면서 운동도 했다. 매일 일하고 오는 아내를 위해 2~3일에 한번 정도는 바닥을 청소기로 밀고 걸레로 닦았다. 아내는 나의 사소한 행동에도 고마워했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을 했다. 물론 개선이 되다가 마음이 우울해지는 경우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우상향으로 조금씩 우울감과 무기력증이 사라지고 있었다.



책을 읽는 것조차 힘들었으나 책상에 앉을 수 있게 되었고 책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의 가치관을 바꿔준 인생의 책을 한 권 발견하게 된다. 그 책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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