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미로 시장 한우 전문식당 초우에서
고기는 여러 명이 둘러앉아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것이 제격. 하지만, 고기의 ‘맛’을 느끼는 차원에서는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며 술도 마시고 대화도 하다 보니 고기 동호회 모임 같은 게 아닌 이상, 진득하게 고기 맛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좋은 고기 맛을 느끼려면 고독한 미식가 인트로를 떠올리는 것이 좋다.
誰にも 邪魔されず 気を遣わず ものを 食べると 言う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신경 쓰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고 하는
孤高の 行為。 この 行為こそが
고고한 행위. 이 행위야말로
現代人に 平等に 与えられた さいこうの いやしと いえるのである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라고 할 수 있다
고기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고로상처럼 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서 천천히 내 페이스대로 구워서 먹으면 육즙의 맛과 질감, 양념과의 어울림을 차분히 느낄 수 있다. 허겁지겁 경쟁하며 먹지 않으니 과식도 하지 않게 되고. 특히 비싼 고기일수록 혼자 먹을 때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지난번 포스팅 ‘혼고기로 깨달은 말 한마디의 힘’처럼 1인 손님을 환대하는 집은 많지 않다. 2인분을 먹는다고 해도 안 파는 집도 꽤 있는 편.
지난 2020년 12월, 어찌어찌 맡게 된 영상 촬영 건으로 원주로 향했다. 일 끝났으니 먹어야지. 사실 ‘원주에서 한우?’라며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은근히 원주가 한우로 유명하더라. ‘치악산 한우’라는 브랜드로 아예 지자체에서 나서 홍보하고 있기도 하고. 뭐 평창이나 횡성이나 원주나 거기서 거기니 괜찮지 않을까. 문제는 과연 1인 손님에게 한우를 팔까 하는 것.
원주 미로 시장 한우 골목을 돌아다니며 혼자 먹어도 되냐니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2인분을 시키겠다 해도 마찬가지. 그러던 중 ‘한우 전문 초우’라는 간판의 집이 왁자 왁자해서 문을 열고 '혼자 1인분 먹어도 돼요?' 물어보니 ‘예에. 앉아요’ 허락을 하신다. 윳후~
가게 안에는 이미 단골인 듯한 손님들의 술판이 벌어졌고… 그런데 찬을 가져다주는 아주머니가 당황한 얼굴로 내게 묻더라. ‘혼자 1인분 드시는 거요?’
알고 보니, 아주머니가 손님들 주문받느라 정신이 없어서 일단 무조건 오케이 한 모양. 조금 고민하시더니, ‘그럼 모둠 한우 말고 살치살로 시키면 안 될까?’ 물어보신다. 아무래도 모둠 1인분은 조금조금 잘라야 해서 일도 버겁고 하니, 1인 손님 받은 김에 조금 비싼 살치살을 권하신 것 같다. 강요하는 건 아니었지만, 뭐 미안한 감도 있고 해서 OK 하고 소맥을 말기 시작. 어느새 고기가 나왔다.
오. 마블링좀 보소. 단골들의 ‘고기 좋죠? 잘오신거여~’ 찬사 가운데 소맥을 꼴딱거리며 찬과 숯이 깔리는 것을 바라본다. 오. 불도 참숯이네. 좋아. 고기 한 번 얹어볼까?
소금만 톡 찍어 먹어보니 , 치악산 한우 원더풀. 뭐 고기가 구우면 다 비슷하긴 하지만 기름도 유난히 고소하고 질감도 좋다. 맛이 강한 특제 쌈장에 무쌈, 파무침까지 넣어 먹어도 고소한 기름이 그대로 느껴진다.
고기 1인분과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후 남은 맥주로 마무리하려는데 단골들이 갑자기 메뉴판에도 없는 걸 시킨다. ‘이모~ 차돌박이 좀 있어? 좀 줘보지’. 손님상에 낸 고기는 서울에서 보던 여느 차돌박이와는 달랐다. 보통 얇게 대패처럼 썰어서 나오는게 차돌박인데, 이 집은 얼지 않은 생차돌박이를 두툼하게 썰어주더라.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이모님 여기도 차돌박이 1인 하나요~
무슨 목삼겹처럼 지방과 근육이 고루 섞인 이 자태를 보라. 보통 기름은 금방 녹아내려 물렁물렁해지는데 이 집 생차돌박이는 적당히 구워도 기름이 단단하고 쫄깃하게 씹힌다. 쪽파까지 잔뜩 넣어 쌈을 싸도 고소한 맛이 죽지를 않는구나. 아, 그 집만의 특성인진 모르겠는데 쪽파를 썰지 않고 통으로 주더라. 그거 넣어 먹는 맛도 알싸하니 좋다. 예정에 없던 무리한 지출이었지만, 한우 2인분에 맥주 소주 각 2병씩을 먹어치우고 알딸딸한 가운데 집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잡아탔다. 아… 이런 게 행복 아니겠나.
얼떨결에 간 집이지만 고기 질도 원더풀, 찬들의 맛도 좋았다. 특히 그 쌈장이 착착 붙더구먼. 4인용 좌식 테이블과 입식 테이블이 각각 두 개뿐인 작은 가게라 단체로 갈 땐 꼭 물어보거나 예약해야 할 듯. 뭐 이 집만 맛있는 게 아닐 테니 그냥 한번 들러 분위기 괜찮은 집을 들러도 될 듯하다.
이렇게 좋은 경험을 했을 때는 내가 글을 쓴다는 게 참 뿌듯하다. 되지도 않은 필력이지만 내가 경험한, 내게 는 아주 값진 경험과 느낌을 나 혼자 되새김질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나눈다는 건 기분 좋은 경험이다. 작문이나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기계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글만 써왔지만, 이제 사람들과 나를 나누기 위해 조금 더 펜을 갈고닦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또다시 한 달 글쓰기 훈련소에 입소했다. 아, 펜이라면 이제 좀 고루한가? 글밥 먹는 15년 동안 계속 키보드만 두드려 왔는데… 이렇게 표현하니 무슨 키보드 워리어 같구먼.
어쨌든 또다시 시작된 한 달의 여정, 더 많이 꼼꼼하게 써서 나라는 키보드를 잘 벼려놓는 기회로 만들어야겠다. 한 달 동안 변변치 않은 글을 읽어줄 한 달 글쓰기 훈련소 훈련병 여러분께도 미리 이 글을 빌어 감사드린다.
p.s) 아, 혹시 이 글을 보고 '한우 전문 초우' 식당에 가서 나도 혼자 한우 1인분 먹게 해달라고 조르지는 말았으면 한다. 글에 쓴 대로, 아주머니가 정신없으실 때 얻어걸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