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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Apr 23. 2024

형태 없이는 여백도 있을 수 없듯이


사랑하는 선생님들께


벚꽃이 피고 지는 봄날입니다. 이사한 집 뒤에 산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이 있어요. 매일 그 길을 오가며 계절을 실감합니다.


막 이사 왔던 겨울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여백이 좋았습니다. 텅 비어있지만, 여백을 통해 형태가 드러남을 알기에, 빈자리로 다가올 봄이 기다려졌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비어 있던 나뭇가지에 푸른 새순이 움트기 시작하더니, 하나둘 꽃을 피웠습니다. 변화하는 계절을 느끼며,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축복이고 감사였습니다.


화사하게 봄을 수놓던 꽃잎이 떨어지고 나면 금세 여름이 다가오겠지요. 여름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자연의 순리대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뿐입니다. 


여백과 형태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여백 없이 형태가 존재할 수 없듯, 형태 없이는 여백도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이 관계는 연기(緣起)처럼 상호보완적입니다. 서로를 강화하거나 방해할 수도 있고, 조화를 이룰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그물에 얽혀 있습니다. 내가 평온해야 나와 관계 맺는 이들이 평온해질 수 있지요. 반대로 내가 평온하지 않으면 나로 인해 불행을 겪는 이들이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마음공부에서 연기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연기 없이는 마음을 알아차릴 수 없으니까요. 


연기를 통해 삶을 바라보면, 삶의 관점을 바꿀 수 있습니다. 형태로 보는 나, 형태로 느껴지는 내 마음이 존재해야 여백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형태 없이는 여백이 있을 수 없듯, 괴로움 없이는 괴로움의 소멸도 없습니다. 


그러니 괴로움이 일어나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한 겨울, 텅 빈 나뭇가지가 온화한 봄꽃을 품고 있듯, 괴로움에는 괴로움의 소멸이 함께 있으니까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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