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빌라 인테리어 6 - 안방보다 라운지룸

안녕, 오리빌라

by 장명진


5평짜리 안방을 나만의 라운지룸으로


나는 스물여섯 살이 될 때까지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다. 처음으로 아파트 내부에 들어가 본 것도 스물셋 무렵이었다. 내 머릿속의 주거공간은 안방과 작은방으로 그려질 뿐, ‘거실’이라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보는 개념에 불과했다. 스물여섯, 직장 동료의 아파트에 얹혀 살 때에도 눈치가 보여서 나에게 할당된 방 밖으로는 거의 나오질 않았다. 그때도 내게 거실은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같은 것이었다. ‘거실’은 가난했던 나에게 있어 ‘판타지’와 같은 공간이었다.


4년 가까이 직업 군인 생활을 하며 착실히 모은 돈으로 처음 파주의 오래된 아파트 전세를 얻었을 때 가장 기대했던 것도 역시 ‘거실’이었다. 그런데 70년대에 지어진 그 아파트는 거실이 없는 빌라 같은 구조의 아파트였다. ‘없으면 만들자!’ 그때부터였다. 내가 ‘안방’이 아닌 ‘라운지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1년 전 얼기설기 만들었던 내 첫 라운지룸


‘안방’이라고 하면 역시 일단 거대한 퀸사이즈 침대와 벽 한 면을 가득 채우는 장롱이 필수다. 침대 앞에는 기다란 티비장이 하나 있고, 그 위에 텔레비전이 놓인다. 어디 한쪽에 가지가 많은 옷걸이와 술병 등을 진열해놓은 진열장이 있을 수도 있겠다. 뭐랄까, 거대한 가구들은 몽땅 때려넣어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발 디딜 틈 없는 카오스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역시 전통적인 ‘안방’의 묘미일 것이다. 덕분에 가뜩이나 여유가 없는 빌라는 더욱더 숨 돌릴 틈 없는 주거공간이 되고 마는 것은 덤이다.


친구라고는 1년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하지만, 나는 오리빌라에서도 과감하게 가장 큰 방을 안방이 아닌 라운지룸으로 인테리어 했다. 보통은 옷방이나 창고로 쓰고 마는 작은방을 침실로 만든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작은방일수록 잠을 자기에 더 좋고, 겨울철 난방비도 절약할 수 있다.



텅빈 보통의 빌라 안방에 페인트칠을 하고, 웨인스코팅과 벽걸이 책장을 시공하니 제법 근사한 라운지룸이 되었다


페인팅과 웨인스코팅 시공은 큰 비용이 들지 않고, 시간과 땀만 있으면 누구나 직접 할 수 있다(시간과 땀이 아주 많이 들기는 하지만). 이 두 가지만으로도 공간은 완전히 달라진다

* 웨인스코팅 시공 TIP


오리빌라의 라운지룸은 연남동 파리지앵 하우스의 추억을 최대한 그대로 복원하고자 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서울을 떠나 멀리 인천까지 오게 된 것인 만큼, 라운지에 있을 때만은 연남동에 살던 시절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리빌라의 라운지가 연남동 집을 차츰 닮아갈수록 나는 거꾸로 이곳이 더 이상 연남동이 아님을 자각하게 되었다. 다시 시작할 힘을 얻고자 추억을 새겼는데, 그 추억들이 오히려 나를 위축시키고, 아프게 만들었다. 혼자 있을 때면 초라한 삶으로 무너져 내렸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마음이 점점 오그라들었다. 내 삶을 그렇게 만든 것은 결국 나 자신임에도 다른 데서 이유를 찾고자 했다. 점차 집이 문제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다.


인테리어 글을 쓰기 위해 옛날에 찍어둔 오리빌라 라운지룸 사진을 정리하며 그 시절 나의 옹졸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오리빌라는 문제가 없었다. 충분히 사랑스러운 공간이었고, 어쩌면 나는 그곳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으리라. 아마 그랬다면 지금처럼 매일 깊은 외로움 속을 헤매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옛 추억에 빠져 있을 때도, 시간은 새로운 추억을 만든다


오리빌라의 라운지룸은 그 자체로 사랑스러웠음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최종 모습은 결국 나의 마음으로 만들어진다. 초가삼간이어도 그 속에 내 마음이 풍성하게 깃들면 어느 대궐 못지않을 것이다. 누군가 ‘빌거’라는 말을 한다면, 그 말을 한 사람의 마음이 거지인 것이지, 사랑하는 나의 집이 누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인테리어를 애정하는 이유는 주거공간에 대한 나의 사랑을 형태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한 인테리어는 그 누구도 감히 무너뜨릴 수 없다.


2022. 8. 2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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