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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잎 Nov 12. 2024

X같은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서재에 있다



우리는 삶의 반을 차지하는 일을 대체로 싫어합니다. 회사에서 친구(혹은 동료)와 메신저로 주고받는 수많은 직장생활 밈속에는 실제로 '번아웃증후군', '무기력함', '우울'과 같은 병리적 현상이 존재합니다. (괴로울 때 웃는 자가 1류라고 하지만...) 수많은 병리적 현상이 존재해도 일은 밥벌이를 넘어 정체성과 관련 있기 때문에 쉽게 관둘 수 없습니다. 내 이름 세 글자보다는 회사 이름이 나를 더 쉽게 설명해 주는 순간을 아주 많이 맞닥뜨릴 테니깐요. 우리는 일을 함으로써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라는 감각을 지우고 나로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일은 하면 할수록 가짜의 내가 가짜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 채 가짜의 가면을 쓰고 평생 일을 하며 살아갈 생각에 마음 어딘가 답답합니다. 가짜 삶의 시작인 월요일이 다가올 때마다 X같습니다. 월요일을 사랑하려면 진짜 내가 되어야 합니다. '진짜 나'는 어떻게 될 수 있을까요?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직접 물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도 사수 장은교의 인터뷰하는법』 에게 물어봅니다.



장은교, 『인터뷰하는법』 , 터틀넥프레스(2024)

먼저, 발끝으로 원을 그려주세요. 지금 한번 그려보세요. 앉아서 해도 되고 서서 해도 괜찮습니다. 왼발, 오른발 상관없습니다. 저는 별로 유연하지 않은 편이어서인지 작은 원 하나를 간신히 그릴 수 있더라고요. 그것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기우뚱거리면서요. 이 원이 기준점입니다. 내가 그린 원 안에 들어올 만한 사람을 떠올려봅시다. 처음 인터뷰의 방향을 잡을 땐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 막막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일단 발끝으로 그린 작은 원 안에 들어오는 사람을 만나봅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 시선과 시야를 넓혀가는 거예요. 



이직을 포기하고 시골로 돌아왔을 때 조금만 쉬었다가 도시로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어요. 하지만 골목 사이사이를 천천히 걷고 또 걷다 보니 자신만의 일을 만들어낸 저와 비슷한 나이의 친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생활을 했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바로 도시로 떠났기 때문에 제가 사는 이곳을 제대로 걸어보지 않았고 관찰하지 못했어요. 제대로 보지 않고 당연하게 시골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나만의 일을 꾸려가는 사람을 더 만나고 싶어 졌습니다. 사람을 만나면서 시골에 돌아온 지 4년이 되었고 저는 도시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직접 꺼내준 이야기 조각을 모아 인터뷰를 기획하고 저의 고향, 시골에 'good job!'이란 이름으로 전시를 열었습니다. 



good job! :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나만의 일을 꾸려가는 사람들
- 전시를 여는 글 일부 발췌 

'소도시는 아직까지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게 어렵습니다. 거리에 새로운 가게보다 이미 유행하는 프랜차이즈 가게가, 서점에는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몇 년 동안 진열되어 있죠. 새로운 것보다 안정적인 것이 옳다는 소도시의 흐름이 친구들을 수도권으로 떠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수도권에서 당연히 집이 아닌 방 하나에 살아야 하는 것도 알고, 집 냉장고에 항상 있던 과일을 사는 게 주저될 정도로 돈을 많이 벌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의미 있는 일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더 큰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우리는 떠났습니다. 수도권에 가는 이유를 단순히 소도시보다 일자리가 더 많아서라고 간단한 숫자로 말한다면, 우리가 정말 원하는 삶은 일그러집니다. 

(...)

대도시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고향인 소도시로 돌아오는 걸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려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일을 해보고, 낯선 곳을 가봐야 합니다. 하지만 소도시는 그런 게 부족합니다. 개인의 역량으로 해결하지 못할 만큼, 아주 많이. 소도시에서 다양한 삶을 볼 수 없으니, 막연하게 대도시에 대한 환상을 품습니다. 대도시에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고 믿으면서요. 만약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다양한 삶의 조각을 만났다면 저는 소도시에 남았을까요. 그럼에도 도시로 떠났을까요? 소도시의 삶이 맞고 대도시의 삶이 틀리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삶이 나에게 맞는지, 다양한 삶의 이야기 조각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기획했습니다.
 




<good job!> 전시포스터
<good job!> 인터뷰 전시 도록
<good job> 전시 사진 일부



전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 조각을 읽고, 떼어내고, 조각내고, 다시 자신에게 붙이는 과정에서 관람객들의 멈춰있는 순간을 보는 게 행복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롭지 않아 보이는 순간이 놀라웠습니다. 오히려 나무처럼 단단해 보여 숲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는 기분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인터뷰 일을 하면서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나 쉽지 않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매체에 게재되는 것이 아님에도 이야기를 꺼내주신 분들 덕분에 종종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는 여전히 저의 업(業)이 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를 어떻게 업으로 만들 수 있을까, 갈증을 느끼던 저는 다시 한번 인터뷰를 모으고, 단단하게 꿰어내어 형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눈으로 직접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감각은 무언가가 실재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믿습니다.



인터뷰를 모으는 일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2022년 전시 <good job!>을 기획했을 때 자신만의 일을 찾은 사람들의 '현재'가 궁금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일을 소개하고,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의 당신은 어떠한지 물었습니다. 2024년에 저는 그들의 '과거'로 갑니다. 인터뷰를 하는 일은 타임머신을 타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지금의 일을 선택하기까지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서사를 쌓아왔는지 묻고 싶어 졌습니다. 월요일을 사랑하는 방법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저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인지 물어야겠습니다. 사랑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에서 시작되니깐요. 사랑을 말하니, 신형철 작가가 쓴 몰락의 에티카의 문장이 떠오릅니다. '사랑이 실패한 것은 내가 타자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을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 진정한 문제는 지금 타자를 잃어버렸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는 것에 있음을 알게 된다. (...) 괜찮은 연애소설은 같은 문제를 이렇게 자기 발견(또 다른 나, 성숙한 환멸)의 형식으로 해결한다.' 이 문장은 나와 너의 사랑을 나와 일의 사랑으로 치환해도 이질 감 없이 그대로 읽힙니다. 나와 일의 사랑이 실패한 것은 나 자신을 몰랐기 때문이기에. 



일과 사랑이 성공함으로써 월요일을 사랑하게 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과 답을 얽혀냅니다. 담쟁이넝쿨처럼 얽힌 질문과 답은 자신만의 서사를 견고하게 쌓아갑니다. 서사가 있는 사랑은 쉽게 대체되지 않습니다. 일과 나 사이에 누군가 끼어들지 못하는 어떤 단호함이 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 일에게 선택되는 일방향적 관계는 매 순간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선택된다는 것은 언제든 선택되지 않을 수 있는,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무력감을 포함하고 있으니깐요.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과 답을 얽혀내야 합니다. 하지만 매뉴얼이 있는 선택관계와 다르게, 사랑은 어디서부터 질문과 답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가벼움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책을 납추 삼아 가벼움을 지긋하게 눌러보고자 합니다. 책은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줌으로써 내 이야기를 꺼내게 하는 묵직한 존재가 되어줄 테니까요. 책은 내 이야기를 듣고 비웃지도 무시하지 않습니다.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여백을 준비해 놓고 천천히 기다려줄 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책을 읽고 밑줄 긋고, 접고, 떼어낸 문장에서 시작해 봅시다. 



그렇다면 이번 글의 제목이 되어준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봅시다.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냐면, 서재에 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단 한 권만 있다면 침대 옆 작은 협탁도, 책상 위 책꽂이도, 책을 넣은 가방도 서재가 됩니다.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의 서재에 들어가기 위해, 저는 편지를 적고 발송하러 가겠습니다. 다음 글은 어떻게 편지를 써야 하는지, 고민이 담긴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

인터뷰하는법, 장은교, 터틀넥프레스(2024)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 문학동네(2008)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마음산책(2014)

시대예보:핵개인의시대, 송길영, 교보문고(2023)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탕누어, 김태성・김영화옮김, 글항아리(2017)



w 박세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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