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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18. 2019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네가 너를 잃지 않는 순간은 네가 이기는 순간

P.261 : 마음 한번 먹었으면 밀고 나가라, 후회도 주저도 말고.
고삐는 젊음에게 주어라, 다시 오지 않을 젊음에게.
네가 너를 잃지 않는 순간은 네가 이기는 순간!


삶은 단 한 번 뿐이라는 사실을 간혹 잊을 때가 있다. 하루를 그냥 흘려보낸 날,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보낸 날은 더욱 그랬다. 의미 있음과 없음의 차이가 무엇인지 정의하기 힘들다는 것, 의미를 찾겠다는 게 삶을 억지로 화려한 색감으로 덧칠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야 할 날들이 계속 줄어드는 건 명확한 사실이니까, 그래서 삶을 다시 정의하려고 매일 애쓰는 걸지도.


젊음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젊음도 어딘가를 통과하는 중이다. 물론, 과거에 존재했을 거라고 상상만 하는 조르바의 이미지도 우주 어디쯤에서 순항 중이겠지. 그래, 이미지로만 각인된 조르바의 수많은 문장들도 젊지 않다. 그렇다면 조르바가 남긴 문장들도 우리에게 노쇠한 이미지로 받아들여 질까? 누구도 선택하지 않을 만큼 진부하고 무시할만한 이야기에 불과할까? 과거의 문장들에게 의미를 구하며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이 몇몇 문장을 삶에 적용하려는 나의 움직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조르바도 그를 고용한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젊음이라는 감옥살이에서 벗어난 모양이다. 어떻게 그들은 인생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었을까? 억측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분명히 구원을 얻었고 안식도 찾았다. 그 말에 숨은 뜻은 젊음을 의지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달관, 아니 자유라는 말로 그들의 삶을 간단하게 정의하는 건 어떨까? 어떻게 그들은 젊게 살 수 있었을까? 버림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찾는 것으로써, 결국 나의 모든 형상을 이기는 순간으로부터 그들은 매일 젊게 산 건 아니었을까.


삶은 실천이다. 실천은 지각에서 나온다. 지각은 나를 아는 것, 내가 누구인지 본질을 깨닫는 의지에서 출발할 터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기준이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확고한 자신만의 생각, 내가 정하는 기준이 우선이다. 기준을 바로잡지 못하면 삶은 방황을 시작한다. 내면에 다가서지 못하기에 어떤 질문이든지 회피하고 본다. 왜? 모르니까, 알려고도 노력하지 않으니까 겉으로 아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가치관이 흔들거린다. 그래서 나는 늘 조르바에게 의지한다. 그는 확고한 기준으로 인생을 살았고 마감한 사람이니까. 그에게 기대봄으로써 나도 그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꿈꾸며.


인생은 재미있는 연극이어서 바보만이 무대로 뛰어올라 연기에 가담한다고 했으니까. 남에게 무엇이라도 보여줄 것처럼 연기하며 사는 건 아닌지 자문한다. 그럼으로써 나는 이제 연기를 끝날 때가 되었다고, 거짓의 허물을 벗어버릴 때가 되었다고 다시금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 하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나는 조르바가 아니니까 조르바를 따르는 것이고 그가 살아온 삶을 꿈꾸는 게 아니겠나. 어제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여전히 나는 과거에 머무는 순간이 많을 테고, 이미 저지른 일들에 후회할 날이 앞으로도 수없이 벌어질 테니 바이블처럼 조르바의 삶을 보관해둘 공간을 마련하고 사는 게 아니겠나. 순간에 집중한다는 게 힘들다는 건 누구나 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충실하라는 마치 자신만을 그 누구보다 사랑해야 한다는 말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삶은 여전하다.


잊을만한 순간에 조르바는 훅 치고 들어온다. 나태하고 방만한 시선으로 생각을 흘려보내는 순간, 어깨를 꽉 부여잡곤 말한다. 그만 생각하고 저지르라고, 주저하다 모두 놓치고 말 거라고. 난 그의 경고를 충실히 받아들이곤, 무엇이든지 저지르는 사람이 된다. 모두가 만류하는 퇴사를 결정했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무모하지만 선언했고, 타인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모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인생이 바뀌었다고 놀자고 말하는 조르바의 말을 따른다면, 생각에 따라 인생은 얼마든지 바뀐다. 살아갈 시간은 어차피 줄어든다. 즐겁게 놀아야 할 이유는 굳이 나를 찾겠다고 외치지 않아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무엇이? 그래 당신의 시간을 말하는 거다. 짧은 인생, 젊음은 계속 사라질 테니까. 그럼에도 작은 습관 하나라도 바꾸지 못하겠다고 주장하는 당신이라면, 당신은 아직 선을 넘을만한 자격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선이란 것도 당신이 세웠겠지만. 나도 당신도 용기를 내볼 필요는 있겠다. 이 책에서 굳이 메시지를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냥 젖어드는 걸 택하련다.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재미를 찾겠다고 결심만 하면 되는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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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필사 모집(~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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