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베껴 쓴 시다. 다이소에서 묶음으로 산 엽서에다 끄적거리며 시간을 보낸 날들. 엽서 한 장에 하루를 꽉 채워 기록해두려고 했던 때가 있었다. 꾹꾹 눌러쓸 때 종이 위를 스치는 펜의 소리가 나를 이끌어주었다. 뭔가를 쓰거나 끄적여야 직성이 풀리는 체질이었던 건지. 내 안에 있던 숨어있던 어떤 것이 겉으로 드러난 건지.....
내성적이고 예민한 나하고 잘 맞는다고 해도 따로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계획조차 없다 보니 하다 말다. 그렇더라도 기록은 쌓이고 엽서는 차곡차곡 모였다. 그중에 몇 개를 뽑아 연재하고 있는데 어차피 시가 외워지지 않아 간직하려는 것뿐이니까 부담이 없어서 좋다.
마음에 울림이 있는 시나 와닿는 글을 수집하는 내게 다이소에서 묶음으로 파는 엽서가 얼마나 요긴한지 모른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게 마법 같아 놀랍다.
해가 점점 더 짧아지고 어둠은 길어지고 있다.
가을을 읊은 시는 많지만 김종길의 <가을>은 서서히 마음에 스민다.'내 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을 남긴 시를 찾은 나는 '또 한 번의 가을'을 음미하고 있다. 머리카락이 성글어가는 것처럼 기억도 성글고 옅어져서 아무리 좋아도 잘 외워지지 않아 여러 번 읊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