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드라이브를 하자며 나를 끌고 나왔다. 창문에 기대 바람을 쐬면서 밖을 내다보는 와중에 폐식용유를 실은 트럭을 봤다.
"폐식용유는 모아다 어따 쓰지"
"비누 만들겠지."
"아... 비누"
"기름은 참 신기해."
"뭐가?"
"불순물을 직접 걸러내려 하면 골라낼 수 없는데, 며칠 가만히 두면 불순물이 침전되잖아. 중력은 참 무서워."
"그건 뭐 당연한 건데, 무서울 것까지야."
아빠와의 대화가 계속 맴돌았다. 직접 손으로 걸러내려고 하면 걸러지지 않지만, 가만히 두면 지구의 중력에 의해 자연히 불순물은 걸러진다. 인생의 불순물도 사실 그렇게 자연히 걸러진다. 하지만 그 당연한 이치를 잊고 살아서 우리는 무서운 결과를 맞이한다. 나를 가만히 둬야지.
처음 정신과 선생님을 뵀을 때는 나 자신을 변호하기에 급급했다.
"코로나 때문에 운동을 못해서 번아웃이 온 거뿐이에요."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정신과에 오지 않았을 거예요."
그때 나는 아마도 나의 괜찮지 않음에 어떤 이유를 대고 싶었던 것 같다. '선생님, 저 엄살 부리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파도 된다고 허락해주세요.' 사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덕분'이었다. 두 번째 우울증 덕에 전보다 성숙해진 우리 가족들이 서로를 얼마나 더 걱정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라는 구성원이 가족의 행복에 얼마나 많이 관여돼 있는 지를 알게 됐다. 내가 아파 누워있는 동안, 내 방문이 열리면 부모님은 내 안색을 확인하기 바빴고, 언니는 퇴근하자마자 내 방으로 달려왔다. 내가 없는 저녁 식사자리는 늘 고요했다. 엄마는 산책을 같이 할 말동무를, 아빠는 애교 부릴 똥강아지를, 언니는 직장의 고단함을 나눌 친구를 잃었다. 나는 우리 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임을 우울증의 재발 덕분에 알게 됐다.
'한 명이 자살하면 그 주변에 평균적으로 5명이 극심한 우울증을 앓는다.'고 한다. 나는 죽고 싶을 때면 나의 쓸모를 그 문장에서 찾았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내 주변 5명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쓸모없는 것 같아도 살아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회복할수록 우리 가족은 웃음을 되찾고 있다. 엄마는 언니의 욕을 센스 있게 받아쳐줄 친구를 찾았고, 아빠는 재미없는 조경관리사 자격증에 대한 얘기를 듣는 사람의 공백을 느꼈으며, 언니는 나 없는 부모님과의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했다. 지금 괜찮지 않은 나는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행복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도 마찬가지다. 괜찮지 않아서 쓸모없게 느껴지느라 힘든 당신은 모를 테지만,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당신이 괜찮아지는 날만을 기다린다. 그만큼 우리가 가치 있어서다. 인간은 자신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만 괜찮아질 수 있는 존재다. 우리는 우울과 죽음보다 행복과 안정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다.
글을 다 써갈 무렵이 되어서야 알겠다. 어차피 주제가 정해지면 글은 저절로 쓰여진다. 그때까지 나는 살아있으면서 인생의 각종 문제를 경험하고, 다시 답을 찾고 그리고 거기서 주제를 정하고 그와 관련된 메모를 다듬으면 된다. 그러다 이따금 '그분'이 오시면 말씀하시는 대로 받아 적으면 될 뿐이다. 그리고 죽기야 하겠냐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살면 길은 늘 열렸다. 나는 그동안 열심히 살았고, 잘하고, 멋있다. 마음이 아픈 어른 아이들도 그렇다. 어차피 때가 되면 다 잘된다.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된다. 살아있는 나에게 잘해주기 힘들다면 반드시 누군가에게 당신의 슬픔을 나누자.
끝으로 이 글을 쓰면서 내내 들었던 곡을 추천하고 싶다. Sam Smith의 'Fix you'
When you try your best, but you don't succeed
최선을 다했지만, 이뤄내지 못했을 때
When you get what you want, but not what you need
원하던 것을 얻었지만, 정작 소중한 것은 잃어버렸을 때
When you feel so tired, but you can't sleep
피곤해도, 생각이 많아 잠들지 못할 때
Stuck in reverse
이런 삶이 계속해서 반복될 때
And the tears come streaming down your face
당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때
When you lose something you can't replace
대체 불가한 무언가를 잃었을 때
When you love someone, but it goes to waste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지만, 결국 바람맞을 때
Could it be worse?
그보다 더 아픈 게 있을까요?
Lights will guide you home
빛이 당신을 집으로 안내할 거예요.
And ignite your bones
그 빛은 따스하게 당신을 안아줄 거예요
I will try to fix you
그리고 제가 당신을 치료할게요
High up above or down below
마음이 저 위로 치솟거나, 아래로 치달을 때
When you're too in love to let it show
말 못 할 정도로 누군가를 절절히 사랑할 때
But if you never try you'll never know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요, 절대 알 수 없어요
Just what you're worth
당신의 진정한 가치를 말이죠.
Lights will guide you home
빛이 당신을 집으로 안내할 거예요.
And ignite your bones
그 빛은 따스하게 당신에게 스며들 거예요
I will try to fix you
그리고 제가 당신을 치료할게요
Tears stream down your face
당신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를 때
When you lose something you can't replace
절대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을 때
Tears stream down your face and I
당신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르면 제가
Tears stream down your face
눈물은 우리들의 뺨을 타고 흐를 거예요
I promise you, I will learn from my mistakes
당신께 약속해요, 나도 실패를 딛고 일어서겠다고
Tears stream down your face and I
눈물은 계속해서 흐르겠죠
Lights will guide you home
하지만 마침내 빛이 당신을 집으로 안내할 거예요.
And ignite your bones
그 빛은 따스하게 당신을 안아줄 거예요
I will try to fix you
그리고 제가 당신을 치료할게요
[출처: Sam Smith(샘 스미스) - fix you(live) 가사|작성자 bee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