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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게을 Jul 31. 2021

"안녕하세요. 안아주러 왔습니다!"

유독 그런 날이 있다.






유독 그런 날이 있다.

문득 쎄한 기분에 눈을 떴는데 늦잠을 잤을 때,

사람 많은 교차로 횡단보도에서 대자로 넘어졌는데,

그런 내 옆으로 지금 타야 겨우 지각을 면할 수 있는 버스가 지나갔을 때,

하필이면 부장님이 이른 출근을 하셨을 때,

하필이면 재수 없는 꼰대 상사와 단 둘이 점심을 먹게 됐을 때,

오후 내내 준비한 보고서가 잘못된 클릭 한 번에 날아갔을 때,

아까 그 재수 없는 꼰대 상사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데 부장님이 혀를 끌끌 차며 지나갈 때,

눈물이 앞을 가리고, 안주머니에 고이 넣어둔 사직서를 꺼낼까 말까 고민되는데,

쓸데없이 이성적인 사고 회로는 엊그제 긁은 카드값을 떠올릴 때,

이를 바득바득 악물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집에 가서 샤워하고 맥주나 때리고 싶다 아몰랑을 시전 중인데,

빌어먹을 부장이 큰소리로 회식을 외칠 때.






세상아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그래. 유독 그런 날이 있다.

뭘 해도 내 마음대로 안되고, 앞날을 생각하면 막막하고 갑갑해서 눈물만 나오는 그런 날.

단순히 당신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나는 언제쯤 마음껏 어깨나 한번 펴보고 살아볼까?

나는 언제쯤 세상을 향해 당당히 소리칠 수 있을까?

작은 텔레비전 상자 속에는 죄다 삐까뻔쩍 잘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뿐이다.

더 작은 휴대폰 속 인싸들은 더욱 넘사벽, 다른 세상 이야기만 같다.

사람들은 그들이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고 우리네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저마다 특출 난 능력이 있고, 적절한 때에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는 아주 될놈될이더라.

잔뜩 녹초가 되어 비관적인 생각들에 절여진 몸으로 새벽 막차를 타고 돌아온 집.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익숙한 손길에 갑자기 낯선 온기가 느껴진다.






안녕하세요. 안아주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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