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및 캐릭터 소개.
포옹:
'사람끼리 품에 껴안음'
'남을 아량으로 너그럽게 품어줌'
얼음은 0도에서 녹는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은 36.5도, 너와 나의 심장이 맞닿은 그 온도에서 녹는다. 누군가를 안아주는 일은 나의 온기를 나눠주는 것이고, 안기는 이의 마음까지 품어주는 것이다. 포옹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말없이 안아주는 것만으로 상처를 보듬고, 다시 일어설 용기와 힘을 준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우리의 일상은 달라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삶은 더 팍팍해졌고, 아프고 외로운 이들은 더욱 고립되었다. 당연한 것들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고, 소소하게 지나온 시간들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다. 위로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포옹은 우리가 받고 싶은 위로에 가장 가까운 답일 것이다.
이리 와 안아줘.
이리.
사람들은 이리를 그저 작고 귀여운 토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이리는 토끼의 탈을 쓴 맹수다. 착하고 상냥하지만 종종 사나워진다. 특히 배고플 때... 물론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한다. 노란 토끼 옷을 입고 순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서 '나는 무해하다.'라는 인상을 주면 사람들은 이리를 귀여워하고 사랑해준다. 어엿한 맹수로서 가끔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예쁨 받는 지금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 오히려 언젠가 자기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맹수의 모습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한다. 가끔 삐쭉 드러나는 송곳니를 보고 사람들이 무서워할까 봐, 실망하고 미워하고 떠나갈까 봐 걱정이 많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얼굴 말고 진짜 모습은 꽁꽁 숨기느라 고군분투하다 보니 지칠 대로 지쳐서 결국 마음의 문까지 꽁꽁 닫아걸었다.
아나.
뚱한 얼굴에 늘 무표정이지만 화난 건 아니다. 착하고 순해서 화는 잘 내지 않는 편. 퉁퉁하고 커다란 몸집 탓에 둔해 보이지만, 의외로 마음이 섬세하고 여려서 상처를 잘 받는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사람들은 아나를 분홍색 털을 가진 특별한 곰이라고만 생각한다. 아나는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아나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기도 한다. 그 기대 속엔 부러움과 동경이 섞여있지만 간혹 차가운 시선과 냉혹한 평가도 함께 따라온다. 부담을 느낀 아나가 힘들다고 말하면 "너는 뭐 겨우 이런 것 같고 그래?", "너는 왜 이렇게 엄살이 심해?"라고 말하며 제멋대로 자신들의 기대를 강요한다. 그런데 아나가 자극에 민감하고, 상처에 취약한 건 사람들 눈에 분홍색으로 비치는 털이 사실은 속살이기 때문이다. 아나는 사실 태어날 때부터 털이 없어서 분홍색 속살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곰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추위도 많이 타고, 작은 자극에도 쉽게 상처 받는다. 지금 아나에게 필요한 건 있는 그대로 아나를 바라봐주고 거칠지 않은 따뜻한 손길로 안아주는 포옹이다.
쥬.
이리와 아나의 하우스 메이트. "쥬쥬쥬쥬쥬" 소리를 내며 항상 이리와 아나의 주변을 맴돈다. 지치지 않는 체력과 활발한 성격으로 집안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다만 수북이 자란 털 사이로 눈이 가려져 있어서 그런지 눈치가 좀 없는데, 가끔 이리와 아나가 성가셔해도 아랑곳 않고 이리와 아나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건 이리, 아나, 푹신한 쿠션, 따뜻한 햇살, 맛있는 모든 것. 코가 커서 그런지 냄새를 잘 맡고, 코가 큰만큼 귀도 커서 아주 작은 소리까지 잘 듣는다. 선천적으로 소심하고 겁이 많은 쥬에게 커다란 귀는 재앙과도 같다.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다 듣고, 혼자 놀라고 혼자 겁에 질린다. 그래서 혼자 있는 게 싫다. 너무 무서우니까. 하지만 이리와 아나가 함께 있어주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혹시나 너무 작아서 쥬를 잊거나 빼놓고 어디 갈까 봐 항상 "쥬쥬쥬쥬쥬"소리를 내며 이리와 아나 곁을 빙빙 돌면서 나 여기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기 나와 똑 닮은 이리와 아나, 쥬가 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이리, 마음이 여리고 상처를 잘 받는 아나, 불리불안과 애정결핍이 있는 쥬.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은 어딘가 조금씩 결여된, 나와 닮은, 당신과 닮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긴 하루의 끝에 달려가 안기면 서로가 서로의 품에서 온기를 느끼며,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이야기.
이리와 아나, 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