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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Feb 26. 2024

아름다움 앞에 마음이 어딘가 묻어나고

(21) 슬픔 앞에 서서, 꽃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 일랑

아름다움 앞에 마음이 어딘가 묻어나고



말도 안 되는 슬픔이 덮쳐올까봐

감정을 꺼놓고 로봇처럼 걷던 며칠

지하철 출구 꽃집 앞에 섰다.



남에게 꽃다발 선물, 그렇게나 좋아하면서

나한테는 단 한번도 준 적 없었구나-



쨍한 노란잎이 촘촘히 줄 선,

말려 올라갈수록 연보라물 선명한,

내 침대보만큼 맑은 분홍의,



몇 송이 골라 신문지에 싸달라 부탁했다.

하늘에서는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이 내렸고

나는 아름다운 존재들과 함께 밤을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오늘마저 사랑할 수 있을까



예쁘다.

향기로워.

눈물나게, 아름다워서


덕분이야. 되뇌이며

집에 타박타박 들어갔다.



키보드 앞에 화병을 두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물을 갈아주고 있다.

이상하게 나 같아서, 요상하게 애틋해.



언젠가 꼭 질 테지만

오래 내 방에서 함께 눈맞추어 주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앞으로

마음이 아픈 날에는

나를 위해 꽃을 사 주렴, 얘야.



그러니 나를 사랑하는 모든 이여

다른 무수한 아름답다는 말 대신

조용히 건네주세요,



그럼 고백인 줄 알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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