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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되었습니다!

8주차- 부모

by 홍그리

여태껏 내 인생이 어떤 형태로 한 방향을 향해 쭉 달려왔다면, 이건 거대한 눈보라가 몰아쳐 내 인생의 형태와 방향 전체를 바꾸는 것과 같다. 마치 '나'라는 사람이 태어나 삶을 부여받으며 몇십 년간 누렸던 모든 경험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그게 내 자녀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숭고하고, 더 경이롭다.


이 육아일기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아내의 임신소식을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여기선 여태껏 세상에 얘기하고자 하는 내 메시지, 연일 터지는 사회이슈에 대한 고찰, 타인의 고민에 내 경험을 빗대 더 나은 해결책을 만드는 욕구, 영화나 책에 대한 영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감 있는 언어로 말하고 싶다. 왜냐.이건 앞으로 내 삶의 이유가 되는 내 자녀에게만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말일테니까. 보는 사람은 여럿이겠지만 당사자는 한 명이다. 그가 언제 이 글을 봐도 상관없다. 내 초심을 지키기 위한 글이기도 할 테니. 적어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내 자녀를 잘 키워내는 것'은 인생에서의 최종목표이며, 이 채널의 모토처럼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다. 어떻게든 이 채널의 동기부여가 되는 가장 큰 전제조건은 마련된 셈이다.


가장 먼저 나는 그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건강하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남에게 피해를주지 않고, 성실과 같은 원론적인 말보단 타인의 규정에 흔들리지 않는 본인을 만들어갔으면 한다. 돈이 전부가 된 이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능력 혹은 사회적 위치에 의해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타인의 규정에 우리는 여실히 노출돼 있다. ‘쟤는 이런 사람이야, 이건잘하고 이건 못해, 성격이 어떠니, 외모가 어떻니, 뭐가별로니 뭐니’ 본인을 둘러싼 꽤나 많은 영역을 구분하고 만들어 타인으로부터 규정받는다. 사람은 대개 본인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겐 엄격하다. 따라서 이 타인들의 규정에서는 사실여부와 크게 상관없이 부정적이고 꽤나 충격받을 수 있는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감당해야 만한다. 그래서 이 타인들의 규정 말 그대로 지뢰밭 속에서 나만의 규정을 만들고 그 기준을 끝까지 가져가기란 꽤 쉽지 않다. 내 월급, 내 평판, 내가 가진 것, 이룬 것이 조금이라도 피해볼 염려가 있거든. 타인이 본인을 깎아내리는 이유 자체도 본인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먼저 나 스스로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본인을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과 행복하고, 무엇으로 타인을 도울 수 있는지. 단순히 객관적인 지표와 숫자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고 본인만의 인생에서 근본적인 쓸모를 찾아내는 것. 그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지표가 아닐까 한다. 타인의 규정에 이끌리다 보면, 시간이 흘러 본인을 돌아봤을 때 결국 남는 건 공허와 허무뿐이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살았나, 내게 남는 건 뭔가’와 같은 것이다. 눈칫밥에 익숙해져 내 한계를 내 스스로 (그것도 아주 보수적으로)자기평가해 버리고 자존감은 낮아지며 시간이 흘러 실제로 그렇게 작은 사람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세상은 부에 대한 숭상이 극에 달한다. 다 각자의 말 못 할 사정과 이유가 있는데 오로지 가진 돈의 액수 혹은 벌어들이는 돈이 당사자의 인생 성적표가 된다. 천만 원 버는 50대와 오백만 원 버는 20대가 있다면 20대는 50대를 돈이 많다고 부러워한다. 근데 실제로 저축하는 금액은 후자가 더 많다. 왜냐. 전자는 교육비에, 대출이자에, 식비에, 자동차유지비, 보험비 빠지고 나면 남는 게 없거든.

1억 명이 있으면 1억 개의 인생이 있는데도 단편적인 돈의 액수에 집착하는 건 부에 대한 숭상이 극에 달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특히나 지금 같은 코인, 주식, 금, 부동산 모두 다 가치가 오르는 시점에서 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누군가는 포모현상에 빠져 벼락거지의 기분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 내 돈은 하나도 잃지 않았는데 타인이 불로소득으로 돈을 버니 그 대상과 끝없이 비교하며 불행한 삶을 소비하는 것이다. 내 스스로 내 인생을 규정하고,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어떤 건지 본질을 들여다보면 사실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급나누기도 마찬가지. 부동산을 강남/서초 다음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구)/ 3 급지/4 급지/5 급지까지 나누어 거주지를 비교하고, 그에 맞게 어울리는 무리를 결정짓고, 자동차브랜드로 그의 인생척도를 평가하고 또 평가받는다.

나는 솔로와 같은 연애프로그램에서도 본인을 소개할 때 얼마나 잘 벌고, 얼마나 잘 모았고를 가장 먼저 어필요소로 삼을 정도. 연애나 결혼에 있어서도 버는 돈과 자산은 가장 중요한 본인의 스펙이 되어 따라다닌다. 그렇게 본질은 잊은 채, 청년들의 초혼연령은 늦어지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도 잃고 정작 집착했던 돈마저 잃는다. 돈은 집착하면 할수록 본인에게서 멀어지는 법이니까. 그 시간에 내가 무엇을 조금 더 꾸준히 할 수 있는지, 설령 잘하지 못해도 흥미를 느낄 수 있는지에 생각해 보는 것이 지금도 흐르는 이 시간을 조금이나마 움켜쥘 수 있는 방법이라 여긴다.


아들일지 딸일진 모르나 지금 내 자녀는 삶에 있어 본인만의 판단으로 행복의 역치를 매일 낮춰갔으면 한다. 누군가 돈을 많이 벌어도, 타인이 본인을 규정한 그결괏값이 좋지 않아도, 그 누구에도 절대 침범받지 않을 본인만의 기준과 내면을 갖추는 게 일 순위로 갖춰야 할 자산이 아닐까. 부모로서 먼저 그걸 알려줘야 할 테고. 그래야 이 치열한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다.

좋은 차 타며 드라이브하는 것보다 지금 같은 초가을에 꽃내음 맡으며 혼자 산책하는 것,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라 주말 저녁 평온한 거실 한가운데의 된장찌개 냄새로 행복을 느끼는 그런 아이로 자랐으면 한다. 그게 건강 다음으로 가장 우선이다. 그렇게 꼭 내가 키워가겠다.


내가 아빠가 된다니! (미리 축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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