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화. 필름 냄새가 가르쳐준 수업

사진 동아리

by 길고영

입부가 확정되자 쉴 새 없이 여러 가지를 배웠다. 동아리 선배를 보면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사진에 대한 것까지.


동아리에서 처음 흑백 필름을 알게 되었다. 몇 미터 길이의 큰 롤필름을 선생님이 한 통씩 끊어 두신다고 했다. 그러면 그 필름을 사서 장면들을 담아 오라는 것이었다. 흑백 필름도 사야 했지만, 인화지도 필요했다. 인화지 한 통은 생각보다 양이 많아 친구와 한 통을 나눠 쓰라고 했다.


학교 가장 높은 계단 끝 방, 암실에서 우리는 모였다.

필름에 쐬인 빛을 고정하기 위해선 화학실험이 필요했다. 암주머니에 필름과 여러 도구를 넣는다. 그 뒤 양손을 집어넣고, 필름 곽을 열어 필름을 현상 탱크에 넣는다. 그리고 순서에 맞춰 용액들을 차례로 부어 넣었다.


필름이 현상되면 노출 실험을 해야 했다. 먼저 필름들을 보며 원하는 사진을 고르고, 확대기에 필름을 위치시킨다. 확대기 아래 인화하고 싶은 크기의 종이를 올려놓고, 확대기를 위아래로 움직여 필름의 상이 종이 테두리 안에 오도록 맞춘다. 초점을 잡고, 인화지에 빛을 쐬었다. 빛을 쬐이는 시간은 여러 테스트를 거쳐 조절했다. 완성된 인화지는 다시 화학실험을 거친다. 이번엔 눈으로 변화를 보며 현상 시간을 조절해야 했다. 원하는 만큼 현상이 진행되면 수돗물로 인화액을 씻고, 정착액에 담가 상을 고정했다. 그러면 빨랫줄에 걸린 흑백사진이 완성된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는 반 친구들과 사귀는 것 못지않게 사진을 배우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암주머니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아 필요한 재료를 빼먹기도 했다. 그럴 땐 양손이 묶인 채로 일어나 불을 끄고, 암주머니를 열어 필요한 것을 넣었다. 빛은 물론 공기도 통하지 않는 암주머니에서의 작업은 언제나 땀이 나는 일이었다.


무사히 필름 현상이 끝나면, 정형외과의 뼈 사진을 들여다보듯 필름을 빛에 비춰보고, 필름 배인 화학약품 냄새를 맡으며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랐다. 그렇게 완성된 것은 사진으로 가득한 앨범이 아니라 필름으로 가득한 앨범이었다.


필름을 추린 뒤에는 가장 많은 실패를 안겨준 확대기와의 싸움이 기다렸다. 인화지가 밖에 노출된 채 불을 켜는 바람에, 친구와 나눠 쓰던 인화지 한 통을 새로 사야 했고, 노출 시간을 초과해 인화지가 새까맣게 변하기도 했다.


확대기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또 다른 복병이 있었다. 인화지를 현상액과 정착액에 넣어 마무리하는 마지막 단계. 승리를 예감하던 그 순간, 암실 문을 잠그지 않아 다른 부원이 불쑥 들어와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화지를 현상액에 담갔을 때, 서서히 상이 맺히는 순간은 언제나 신기했다. 그리고 기말고사를 치르자마자, 선생님이 여름방학에 우리 사진 동아리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지리산 종주를 한다고 발표하셨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