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동아리
지난여름 방학, 학교 보충 수업도 당당히 빠지고 다녀온 지리산 종주가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됐다.
개학하자마자 또 소집. 이번엔 세상으로 나가 사진을 찍어오라는 공지였다. 가을에 열리는 백합제에 개인 작품을 4점 걸어야 한다는 것. 이제 막 3x4 크기의 사진을 인화할 수 있게 되었는데, 28×36(어떤 사이즈인지 헷갈린다)의 사진을 인화해야 한다니… 무엇보다 ‘사진전’이라니, 우리 동기 부원들은 그저 벙찐 표정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우물쭈물하자 선배들이 나섰다. “시장 같은 데 찍어보는 건 어때?”라고. 그러자 모두 5일장이 서는 날만 기다렸다. 그렇게 시장 풍경을 한 컷, 한 통씩 필름에 담았다. 하지만 다들 비슷한 주제로 찍다 보니 개성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모두 ‘특종’을 잡겠다는 마음으로 카메라 렌즈 반대편 뷰파인더를 들여다보았던 것 같았다.
한 달쯤 사진을 찍고 나니, 작품 선별용으로 3x4 크기로 인화해 제출하라는 공지가 나왔다. 그러자 이제는 인화실이 북적였다. 그간 사진만 찍고 미뤄두었던 인화를 하느라 다들 분주했다. 그 시절, 문을 잠그지 않은 채 작업하다가 누군가 문을 벌컥 열어버려 인화를 망치는 경험은 부원들 누구나 한두 번쯤 했던 것 같다.
1학기에는 단순히 확대기 다루는 법만 배웠지만, 이제는 암실에 살다시피 하던 부원들이 선배들에게서 깨알 같은 꿀팁을 전수받았다. 필름에 담긴 장면을 그대로 인화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법. 전체 풍경 속 한 장면을 잘라 필름에 담듯, 암실에서도 더 작은 장면을 과감하게 잘라내 인화하라는 조언이었다. 물론, 때로는 필름 바깥의 풍경이 아쉽기도 했다.
또 하나의 꿀팁은 확대기 속에서 ‘손으로 하는 포토샵’이었다. 흑백 사진 속 너무 어두워진 할머니의 손등이나 얼굴 주름을 살리고 싶을 때 쓰는 기술. 확대기에서 20초간 빛을 쐬는 동안, 나무젓가락 끝에 동전만 한 종이를 붙여 해당 부위에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방법. 내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느냐에 따라 빛이 덜 닿아 작품이 완성되었다. 손기술로 밝기와 대비를 조절하던 그 시절이, 10년 뒤엔 컴퓨터에서, 그리고 지금은 휴대폰에서 이루어진다니… 세월 참 빠르다.
그렇게 선별된 3x4 사진은 선생님의 마지막 선택을 거쳐, 1호 크기의 대형 사진이 되었다. 1학년 때의 대형 사진 인화는 모두 선배들이 해주었다. 사진첩 속 작은 사진은 몇 번 들춰봤지만, 1호 크기의 백합제 전시 사진 또한 집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을지 궁금하다. 이번에 집에 가면 꼭 찾아봐야겠다.
축제가 시작되자, 우리 부원들은 단숨에 ‘축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일반 학생, 부모님, 동네 주민들이 축제를 즐기는 사이, 우리는 작품 앞에서 서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했다. 하지만 둘째 날이 되자 부원들 대부분은 작품 앞을 떠나 친구 손을 잡고 다른 부스, 다른 공연장을 기웃거렸다.
중학교 시절 내가 상상한 고등학교 축제는 번데기와 솜사탕을 파는 유원지처럼 북적이고, 운동회처럼 자유분방할 줄 알았다. 실제로는 차분한 분위기로 달랐지만, 그래도 친구 손을 잡고 여기저기 쏘다니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둘째 날 오후, 모두 강당으로 모였다. 무대를 준비한 동아리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댄스스포츠 동아리에서 현란하게 춤을 추던 반 친구는 결국 관련 학과로 진학까지 했다.
그렇게 가을밤은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