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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우리가 남긴 것들

사진 동아리

by 길고영

백합제가 끝나고 2학년이 되었다. 이제 1학년 신입 부원 모집은 우리의 몫이었다. 1학년 반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우리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각 팀이 맡은 반에 들어가 동아리 홍보를 했다. 나는 1학년 때 받았던 면접을 떠올리며, 우리 부에 배정된 반 교실을 면접장처럼 꾸몄다. 내가 면접관까지 맡았는지는 기억이 흐릿한 걸 보니, 아마 그런 중책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에게도 후배가 생겼다.


후배들에게도 우리의 어리바리한 시기, 당혹스러운 지리산 종주,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 기다릴 것이다. 그런데 작년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2학년 중에서 동아리 회장을 투표로 뽑기로 한 것이다. 그때 개학 첫날 전학 온 내 친구가 나섰다.


동아리 활동은 크게 사진에 진심인 아이들과, 선배들과의 교류를 즐기는 아이들로 나뉘었다. 나는 당연히 내 친구도 전자일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나는 친구를 응원했고, 한 표를 보탰다. 개표 결과, 평소의 따뜻한 성품 덕인지 친구는 당선되었다. 그 시절 ‘성품’이라 해봐야 별것 아니었지만, 저녁을 먹고 나면 운동장 트랙을 몇 바퀴씩 함께 걸으며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선배들과 친했던 2학년 중 한 명이 눈물을 흘리며 선배에게 갔다는 소문이 돌더니, 초유의 회장 당선 취소 통보가 내려진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학업 외의 1순위였던 사진 동아리 활동은 내 마음속에서 조금 멀어졌다. 새로 회장이 된 친구는 사진학과 진학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진 아이였고, 결국 그 길로 나아갔다.


지난 화에 쓰지 않았지만, 1학년 시절엔 종주와 축제 외에도 이런저런 기억이 있다. 학교 뒤 산속 야외 음악당에 모여 얼차려를 받던 일. ‘인사’에 대한 지적이었는지... 사소해서 지운 건지, 아니면 불편해서 지운 건지 모를 장면. 산 모기들이 유난히 많았다는 것만은 선명하다.


선거 사건이 지나고, 두 번째 지리산 종주가 끝난 뒤 2학기가 되자 동아리는 급격히 조용해졌다. 3학년 선배들은 졸업 준비를 이유로 하나둘 떠나, 세 명만 남았다. 그 무렵 회장이 제안했다. “돈을 모아 선배들에게 졸업반지를 해주자.” 그러자 1학년 후배들은 힘든 종주에 더해 졸업반지라는 큰 지출 부담까지 겹치자, 결국 떠났고 세명만 남았다. 우리 학년은 부원이 많았기에, “우리 졸업할 때는 그런 건 하지 말자.”며 서로 웃어넘겼다. 결국 반지는 내 인생에서 ‘주는 쪽’의 상징이 되었다. 대학교 3학년 무렵에도 한 번 더 그 역할을 했고, 받아본 것은 결혼반지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런 ‘반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소중한 것이 내 책장에 있다. 3학년 졸업 때 받은 롤링페이퍼. 한 번도 다시 펼쳐본 적은 없지만, 그 시절 한 자 한 자 읽으며 느꼈던 그 행복이, 그 한 권이, 지금도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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