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평 방구석 식덕 생활
내가 '성민사랑동산'이라 부르는 곳에서 얻어온 식물들 중 허브가 네 종이다. 페퍼민트, 애플민트, 바질 민트, 로즈메리. 작은 묘목들이라 작은 포트라도 비좁아 보이지 않았다. 정원의 흙에 심은 것이니 화분도 흙도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가져온 그대로 키우고 있었다. 허브들의 성장은 너무 더뎠다. 빛이 적은 우리 집 베란다 환경 때문인지, 허브란 식물이 본래 쑥쑥 안 자라는 건지 매일 들여다보니 아주 더 안달이 났다.
허브들을 1층 텃밭에 내다 놓은지 일주일인지 열흘쯤 되었다. 하루 몇 번도 들락거리면서 보고 또 보니 사실 한 달은 된 듯 느낀다. 매일 보는 식구 변하는 걸 감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허브들은 볕 좋고 바람 충분한 바깥에 나가서도 나를 놀래킬만큼 속도를 내주지는 않았다. 잎이 두꺼워지고 줄기에 힘이 생기고 전체적으로 건강해는 보인다.
1층 아저씨가 얼마 전 분갈이를 안 해주어서 그런 거 아니냐, 지나는 말로 했던 게 내내 걸렸다. 정원의 흙이 무슨 영양가가 있을까, 작은 포트 안에 담겨 있으면서 물만 먹고 뱉고 했으니 기름기가 쫙 빠졌으리라, 하여 아침 분갈이를 시작했다. 뒤집은 세 개의 포트에서 나온 흙 색깔이 제각각이다. 흙이라는 낱말은 얼마나 납작한가, 흙은 이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혼합된 무엇들 중 어느 것을 지칭하는 것인가, 다른 크기의 알갱이들과 형체를 잃어가는 잔뿌리들과 나무껍질들, 육안으로 구별되는 요소는 고작 그것뿐이나 그것보다 더 많은 이름 모를 물질들이 섞여있다. 흙이란······ 무엇인가.
지상에 키 작은 줄기 하나뿐이던 페퍼민트는 의외다, 뿌리 부분이 무성했다. 잔뿌리가 많고 제일 길다. 포트 바닥에서 뿌리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각기 다른 색깔이던 흙에 터잡고 살던 허브들이 인위적으로 혼합한 동일한 색깔의 흙에서 잘 적응할지 염려가 든다. 뿌리 부분을 덜 자극하겠지 싶어 가는 물줄기가 나오는 커피 드립포트를 사용해 가만히 물을 줬다. 한동안 밖에 있던 식물이나 새 흙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다 또 혼자 결정하고 오늘은 조용한 집 안에서 지내게 한다. 내일 내놓기로.
포트에서 나온 묵은 흙은 텃밭에 뿌렸다. 도시 한복판에서는 한 줌의 흙도 아쉬우니.
1층 할머니가 담벼락에 기대 자라던 길쭉길쭉한 선인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쓰러지지 않게 묶어주고··· 그런데 아직 뿌리가 살아있는 길쭉이 두 대가 바닥에 버려져있다.
할머니, 이거 왜?
- 미워서 버렸부렸어.
이거 저 가져도 돼요?
- 키워볼텨?
네에 네.
- 그럼 이거로 가져가, 이쁘잖어.(쑥 뽑아주신다)
아아, 살살이요~
버려진 두 대의 길쭉이와 반짝거리고 새 순도 붙어 나오기 시작하는 이쁜 길쭉이 하나를 받아서 신나서 올라왔다. 다시 분갈이 용구와 흙과 빈 화분을 끄집어 냈다. 사진을 찍어 자랑삼아 엄마한테 보내니 버려졌던 두 대의 길쭉이 이름을 공작선(인장)이라 한다. 심고서 다시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화분은 어디서 났냐한다. 엄마가 준거다. 밖에 놓고 키우고 장마 지면 들여와서 한 꼭지 오려오란다. 엄마의 베란다는 다 그런 식으로 채워졌다. 길 가다 뚝, 남의 집에 갔다 뚝, 주머니에 넣어 와서 물꽂이 하고, 삽목해서 키워낸 식물들.
아르바이트하러 간 딸이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여느 식당에서 볼 수 있는 겉은 검고 속은 빨간 플라스틱 장국 그릇이다. 그릇에 금이 가서 버리려고 하는데 화분으로 쓸라냐고.
온 우주의 기운이 내 식물 생활을 돕는다. 나의 노력에 주님이 응답을 하시는도다. 식물을 더하여 주시고 화분을 내려주시고 이름 찾는 수고를 덜어주시고. 나는 오늘 기독교인들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주장하던, 나에게는 한없이 허무맹랑해 보이고 맹목적이라 질색했던 그 간증이 어떻게 가능해지는지를 알게 되었다. 기도란 대상에 대한 뜨거운 관심의 표현인 것이다. 뜨거운 것이 지속된다면 주변이 더워지는 것, 그리하여 주변이 반응하게 되는 것, 기독교인들은 이를 기도의 응답이라 하고, 나는 모여 사는 우리 생명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반응 중 하나, 기분 좋은 반응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