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평 방구석 식덕 생활
꿈적도 안 하는 것이 있다.
버려진 것을 가져왔을 때부터 플라스틱 같은 모습을 고대로 유지하고 있다. 혹시 가짜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요즘 하도 진짜 같은 가짜가 많아서, 그렇잖아도 우스개 얘기를 들었던 차다. 선물 받은 선인장을 몇 년 동안 물 주고 햇빛을 쐬어주었다는 것 아닌가. 선인장이란 본래 더디 크는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 이미테이션 선인장이었다는 결론. 작년 가을 딸이 생일 선물로 받아온 선인장이 있다. 지어준 이름은 프랭클린. 식물에 홀릭 되고 난 후 한 날 프랭클린을 의심했다. 가짜 같은 강한 의심이 들었다. 남편에게 프랭클린을 살짝 베어내보자고 했다. ······ 진짜였다! 며칠 후 딸이 발견하고 울상이 되었다. 프랭클린에게 사람 입이 생겼다며.
그런 일도 있고 해서 섣불리 손대지 않으리라 했으나 참으로 변화가 없었다. 그들이 왜 이것을 버리려고 내놨는지 알 만도 했다. 주인공은 서양란인 호접란과 풍란(아마도)이다. 모양은 근사하지만 물구멍도 없는 짙은 회색 화분에 심겨있던 호접란은 꽃 다 떨어진 꽃대도 길게 달려있었는데, 그 꽃대마저도 의심되었다. 팔 벌리고 있는 딱딱한 잎이 네 장, 화분 흙을 털어 뿌리를 보니 그제서야 드러났다. 반은 물러 썩고 반은 딱딱한 뿌리다. 죽고 산 것이 함께 있으니 진짜였다. 죽어가고 있으나 살아가고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다는 신호를 흙 속에 파묻힌 뿌리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면, 호접란의 생장 속도와 사람의 지각 속도가 이렇게 차이가 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일까.
실내에서 호접란을 아주 잘 오래 키운 분의 유튜브 채널을 찾았다. 캐나다에서 사는 나이 지긋한 여성 유튜버다. 가늘고 차분한 목소리로 군더더기 없는 설명을 하는 분이다. 그분에게서 호접란을 수경재배하는 법을 배웠다. 일주일에 이틀을 물 없이 뿌리를 말린 후, 뿌리 전체에 물을 채워 2분, 반을 쏟아붓고 30분, 남은 5일 동안 다 말라버릴 만큼의 물만을 남겨서 그 5일을 유지하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이 루틴을 반복하면서 키운다. 다른 식물의 물 주기와는 아주 다른 패턴이다. 깜박하고 날짜를 넘길까 살짝 아슬아슬 긴장하면서 한 달 반이 지났다.
플라스틱 같은 두 잎의 중앙에서 역시 플라스틱 같은 어린잎이 정말이지 뾰족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보다 신기한 것은 유리병 안의 뿌리다. 반은 물러서 나일론 실같은 뿌리만 남아있었고 반은 시커멨었다. 시커멓던 것들이 초록으로 변해갔다. 그분이 그랬다. 호접란은 뿌리로도 광합성을 한다고(!). 초록색이 되어가는 뿌리들의 중간중간 관절에서 새 뿌리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색깔은 하얀색이 섞인 초록이다. 뿌리가 이쁘다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분의 호접란들은 꽃도 풍성하지만, 뿌리도 더할 나위 없이 탐스럽다. 꽃은 바라지도 않는다. 한 달간의 온도 차를 주어야 하는 난 꽃피우기야말로 물 주기만큼이나 숙제처럼 여겨진다.
흙 마름을 체크해서 흠뻑 물을 주고, 햇빛을 쫓아다니며 화분을 옮겨주고 하는 일은 일방적으로 돌보는 일처럼 느껴지는 반면 호접란과는 지속적으로 어떤 관계 맺기를 하는 기분이다. 너무 과묵하고 반응이 적은 상대라 기쁨도 느긋하게 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