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도둑

1.5평 방구석 식덕 생활

by 지니


도둑질을 했다.


자꾸 훔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엄마가 '늦게 배운 도둑질'이라 했던 거, 그건 식물 기르기의 즐거움을 너무 늦게 알게 됐다는 의미 아니었나? 아니다. 그건 진짜 도둑질을 말하는 거였다. 난 도둑이 되었다.


먹고서 챙겨둔 미니 파프리카 씨앗이 싹을 틔웠다. 탄생은 이유 없이 그냥 기쁨이다. 새싹이 건강하게 그리고 '빨리'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은 기쁨을 지속하겠다는 욕망. 뒷마당에 화분을 내놨다. 다섯 뼘쯤 되는 빈 땅이 남아있어 심어볼까 하던 차, 흙을 고르고 있는데 못 보던 어린 식물이, 검지만큼 자라 있다. 바로 옆에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멋있는 식물과 잎모양이 닮았다. '이게 저걸까?' 가슴이 뛰었다. 갖고 싶었다. 저것처럼 나도 화분에서 키워보고 싶었다.


흙을 고르고 간격을 일정하게 두어 손톱만 한 미니 파프리카 싹을 심었다. 파프리카가 자라고 있던 화분은 이제 비어있다. '이게 저걸까? 잎이 비슷하게 생겼지만 저것일 리 없어.(없어야 해) 저것의 새순일까? 저것의 주인인 101호 아저씨가 심어놓은 걸까? 아닐 거야. 저 구근을 봐, 저건 이런 식으로 번식하지 않을 거야.' 모종삽을 깊이 찔러 넣어 뿌리까지 캐내어 재빨리 빈 화분에 넣었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 101호 앞에서 살짝 몸을 돌렸다.


만약 그것과 같은 것이라면 요건 '알로카시아 오도라'다. 베란다에서 삽목 작업을 하고 다른 화분 옆에 잘 모셨다.


다음 날 아침, 101호 아저씨가 뒷마당에 나와있다. 땅에 심은 미니 파프리카 싹을 따스한 눈길(그렇게 믿고 싶었다)로 바라보고 있다. 건물 관리인 아줌마가 파프리카 심는 걸 보았냐고 묻는다. 역시 아줌마와 아저씨는 땅 싸움을 은근하게 이어가고 있나 보다. 아줌마는 꽃을 주로 심고 아저씨는 채소를 주로 심는다. 두 사람은 자기가 심은 것을 상대방이 뽑아버리곤 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아저씨가 문득 화제를 돌렸다. "파프리카 심을 때 요 자리에 있던 거 파내 버렸어요? 그게 이것의 새순인데···?"


"제가 훔쳐다가 화분에 심었어요"

"죄송합니다"(아, 그건 정말 '알로카시아 오도라'였다!)


맞다. '열쭝'중인 사람은 작은 그것에 무심할 수 없는 것이다. 아저씨가 모르기를 바랐지만 아저씨가 묻는 순간 단박에 알았다. 아저씨가 그 존재를 모를 수는 없었다는 것을. 많은 초록들 사이에 기대 없이 툭 꽂아 놓은 것이라 해도 열쭝 중인 사람의 눈은 그것을 바로 찾아낸다.


땅의 치료를 기대하며 옮겨 심은 비실한 식물들의 변화를 나는 잘 알 수 있었다. 키와 초록색 농도, 그 변화된 생기까지. 주변의 흙 색깔과 마름의 정도도.


새순이 사라졌다는 것을 식물과 열쭝 중인 자가 모를 수는 없다.


아저씨는 괜찮다고, 잘했다고 했다. 파내서 버리면 아깝지 않냐고, 아마 관리인 아줌마를 떠올리며 하는 말이리라. 알로카시아의 새순은 알고 보니 텃밭 다른 쪽에도 두 개나 더 자라고 있었다. 아저씨의 상추들 사이에. 그리고 화분에서 자라고 있던 알로카시아와 같은 크기의 화분이 텃밭 저쪽, 내가 잘 가지 않는 채소밭 쪽에 또 하나 있었다. 그 화분을 아저씨가 내게 주. 셨. 다! 오십 센티쯤 자란, 구근도 나올라 하는 청소년 알로카시아를!


안도 그리고 기쁨!!


머리를 말리고 있는 딸에게 얘기했더니 솔직하게 말해서 금도끼를 선물로 받았다는 나무꾼이 생각난단다. 졸지에 알로카시아 오모라 둘이 생겼다. 잘 키워서 커다란 잎이 출렁거리는 식물을 갖고 싶다 했던 엄마, 식물 도둑 선배에게 선물해야겠다. 101호 아저씨에겐 뭘로 답례하면 좋을까. 더우니까 식사 후 드시라고 아이스크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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