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구원이 되기도 했고 도끼가 되기도 했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
"저 그 책 읽었어요."
라고 할 수 있는 책들이 많지는 않지만, 아주 적지만도 않은 것 같다.
책을 읽고 남은 것은 무엇일까. 책마다 다를 것 같다.
근데 읽은 책 대비해서 기억나는 것이 많지 않고,
실생활에서 실천하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번 읽어서 바로 다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지금처럼 살까. 아니겠지.
더 좋은 학교를 갔을 거고 더 돈을 잘 벌고 있겠지.
라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책이 많은 환경에서 자랐다.
집에 책이 많았고 외할아버지가 늘 책을 사주셔서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이 있었다.
어려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착한 어린이라고 해서 타의에 의해 읽었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
의지할 친구가 없어서 책으로 도망쳤다.
내가 틀린 게 아니라,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지금 여기 말고 저 밖에는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싶었다.
또래 애들은 나를 무시하고 싫어했지만 책은 나를 내치지 않았다.
책은 나로 하여금 내가 처한 불행에 집중하지 않게 해 주었다.
인생의 힘든 구간들마다 책에 기대서 버텼으니 책에게 빚을 진 셈이다.
2023년, 나는 전보다 나아지고 싶었고, 그러려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살던 방식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고 싶었다.
어떤 자기 계발서를 읽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많이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달라지려고 결심하니까 그제서야 보였다.
개선이 필요한 내 단점들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독서를 내 안에 바다를 더 얼어붙게 하는 도구로 쓰고 있었다.
책을 읽고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책을 가까이하는 것은 책 내용을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의 생각을 확장시키는 도구로 썼다면 충분하다.
이제 나도 책을 도끼로 쓰기 시작했다.
내게 위안을 주는 책뿐만 아니라 내 문제점을 짚어주는 책들도 읽는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있다면 고집부리지 않고 기꺼이 바꾸고 싶다.
시간은 다시 1월 1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벌써 수십 번째 맞는 정초지만, 어쩐지 리셋 버튼 같아서 늘 새롭다.
하루를 한 페이지에 담으면, 1년이면 365페이지가 된다. 장편소설 분량이다.
12월 31일에 2025년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을 때, 오늘이 유의미한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하루를 살아나가야겠다.
책을 읽고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구원자로 써도 좋고 도끼로 써도 좋으니 책을 곁에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