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계절이 바뀌는 날

by 소은

추석이 지나니 완연한 가을이 되었어요. 체감상 갑자기 추워진 것 같지만, 본래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어정쩡한 날들이 있죠. 아침엔 서늘한데 낮엔 덥고, 반팔을 입어야 할지 긴팔을 입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그런 날들 말이에요. 계절은 어느 날 갑자기 확 바뀌지 않아요. 흐릿하게, 조금씩, 어느 쪽도 아닌 시간을 지나며 서서히 바뀝니다. 마음도 그래요. 요즘 저는 뭔가 조금 다른 감각을 느끼고 있어요.


저는 오랫동안 나를 채찍질해 왔어요. 더 나아져야 한다고, 변해야 한다고, 저기 먼 곳에 도착해야 한다고 믿었었죠. 지금의 나는 충분하지 않으니까,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니까, 계속 달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거의 학대하듯이 저를 못 살게 굴었죠. 지금의 모습을 부정하면서, 저 멀리 있는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라고 강요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표면 의식이 원하는 것과 무의식이 원하는 것은 다릅니다. 저는 표면적으로 ‘변화’를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무의식은 사실 다른 것을 원하고 있었죠.


'지금 이대로의 나를 인정받는 것'

'여기서 시작해도 괜찮다는 허락'


그리고 무의식이 더 힘이 세니까, 결국 제 마음은 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모습 자체가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나를 채찍질하는 나도, 그 채찍질에 지쳐 쓰러져 있는 나도, 모두 지금의 내 모습이라는 것을요. 저기 어딘가에 도착해야만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여기, 지금 이 순간, 아프고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바로 이곳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시작이구나.” 그 문장이 가슴에 조용히 내려앉았습니다.


마음의 계절이 바뀐다는 건 극적인 변화가 아닌 것 같아요. 거부에서 수용으로, “저기”에서 “여기”로, 도착점을 향한 질주에서 출발점을 인정하는 것으로.


정확히 뭐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눈에 보이는 걸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공기가 달라졌다(?)라고나 할까요?


계절의 틈새에서, 저는 지금 여기에 서 있습니다.

keyword
수, 토 연재
이전 15화평화가 깨질 때, 나는 마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