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수가 아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환타지 소설 중 하나에 나오는 대사이다. 나와 관계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각의 '나'가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말 안 듣는 자식 놈으로서의 '나', 싹퉁머리 없지만 챙겨야 하는 친구 놈으로서의 '나', 같이 엮이기 싫지만 엮일 수밖에 없는 직장 동료로서의 '나'. 이렇게 여러 가지 '나'가 모여 지금의 '나'를 구성하기에 나는 단수가 아니다.
일반적인 소설에서 주인공과 주조연을 제외한 대다수의 인물들은 단수로만 표현된다. 메인 스토리 속에서 잠깐 스쳐 지나갈 인물에게 공들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피프티피플. 이 소설은 그런 틀을 깨고 싶었나 보다.
한 병원을 중심으로 그저 지나가는 배역이 될 수 있는 인물들을 짤막하게나마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무려 51명이나 되는 주인공을 만들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이 소설의 메인 스토리로 삼았다.
본인 이야기에서는 이런 모습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는 저런 모습이 되고,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모습이 된다. 그들은 단수가 아니며 여러 모습의 '나'가 하나로 합쳐진 이들이다.
천재 외과의 유채원은, 김혁현 편에서 연인으로 이어지는 짝사랑의 대상으로, 이설아 편에서 어린이들 앞에서 바나나 수술을 시연하는 봉사자로, 극장 편에서는 두려움 없이 성큼성큼 나서는 여장부로 나타난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라는 동생 때문에 집을 나온 강한영은, 박이삭 편에서 절친하고 잘 맞는 친구이며, 남세훈 편에서는 한때의 짝사랑이었고, 지연지 편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룸메이트로 나타난다.
이렇게 주인공들 간의 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모습들이 이 소설을 흥미롭게 만든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는 한 가지 면만 있을 수 없으며, 그의 다양한 면을 알게 될수록 입체적인 사람이 되고 흥미로운 사람이 된다.
나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그의 다양한 면을 찾아 흥미를 느끼려고 노력해왔을까. 단 한 가지 면만을 보고 쉽사리 결론 내버린 적이 훨씬 많은 것 같다. 현실의 그들은 엑스트라가 아니다. 그들은 단수가 아니다. 반성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