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무언가를 지긋이 보고 있노라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생각의 방향은 내가 떠올리는 바를 연상시키고 이내 종점에 이르면 저항할 수도 없이 그 무언가를 곱씹고 있다. 그 복잡 미묘한 감정들로부터 멀리 벗어나려 굳이 굳이 억지로 다른 걸 떠올려 보지만 헛수고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정말 말 그대로 저항할 수가 없다. 결국 나는 그렇게 붙잡혀 멍하니 다른 세상에 다녀온다.
달이 내게 꼭 그렇다. 저기 홀쭉한 그믐달과 초승달도, 한 아름 풍성함을 머금길 기다리는 하현달도 나를 어딘 가로 데려가는 티켓이지만 그중 나 스스로를 가장 먼 곳으로 안내하는 건 바로 보름달이다. 둥근 보름달. 동그란 게 가득 차 더 이상 이를 데가 없는 그 보름달. 내게 있어 가장 완벽한 그 '보름달'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나를 저 멀리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보름달'로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어 공상과 환상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찰 때, 스마트폰을 꺼내 밝게 빛나는 보름달을 찰칵 찍는다. 빛 번짐으로 사진이 밉게 보여도 상관없다. 나만의 생각 마침표이다.
오늘도 보름달이 휘영청 떴다. 남의 속도 모르고 까만 밤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밤산책을 좋아하는 내게 대로변을 지날 때면 그럭저럭 버틸 만 하지만 어두운 골목길에 들어설 때면 '보름달'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뭐에 홀린 듯이 하염없게 달을 바라본다. 매번 끝맛은 씁쓸한 걸 아는 데 가던 길을 멈추고 우두커니 지켜본다. 여지없이 잠깐이지만 깊게 그리고 멀리 생각을 당해버렸다. 귀를 막고 있는 이어폰에 힘을 얻어 소심한 내가 큰소리로 한숨을 깊게 내쉰다. "후우" 그러곤 사진을 찍는다. 생각 마침표를 찍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그렇게 오늘도 앨범에 보름달 사진이 실린다.
아, 보름달 사진이 앨범에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