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O는 여러 형태의 조직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DAO의 전신 격인 DAC(Decentralized Autonomous Company)와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댄 라리머(이오스 창시자)가 2013년 제시한 개념인 DAC는 일반 법인처럼 '이윤 추구'를 존재 목적으로 삼는다.
비탈릭 부테린은 2014년 이더리움 백서에서 DAC에서 파생된 개념인 DAO를 고안했다.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기업이 영업 기밀과도 같은 소스코드를 공개하기엔 한계가 있어서였다. 그는 외부인조차 소스코드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한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DAC의 Company를 Organization으로 변경했다. DAO는 DAC와 달리 이윤 추구보다는 '투명성을 토대로 한 협력'을 존재 목적으로 삼는다.
그런 만큼, 소스코드만 공개한다면 어떤 조직이든 DAO가 될 수 있다. 벤처 캐피털 역할을 수행하든, 사회 운동을 전개하든, 함께 게임을 즐기든 그 목적과 상관없이 DAO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법인의 거버넌스는 대체로 유사한 것과 달리 DAO 거버넌스는 그 목적에 따라 천차만별이기도 하다.
이번 글은 DAO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 기준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1. 설립 목적에 따른 분류
2. 익명성/조직 형태에 따른 분류
두 번째 기준(익명성/조직 형태)은 내가 직접 만들어봤다. 첫 번째 기준은 다른 자료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어서다. 두 번째 기준은 향후 DAO가 법인에 가까운지 여부를 따져볼 때 참고할 수 있을 듯하다.
DAO는 설립 목적을 기준으로 크게 ▲투자 DAO ▲컬렉터 DAO ▲길드(게이밍) DAO ▲사회활동 DAO ▲프로토콜 DAO ▲연구/교육 DAO 총 6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출처=쪼하(함지현) 제작.
이 중 투자 DAO와 컬렉터 DAO(구성원 모두가 자금을 모아 NFT나 예술품을 공동 소유하는 형태)는 사모펀드와 성격이 유사하다. 개인의 자금을 모아 공동의 목표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비탈릭 부테린이 2016년 출범시킨 '더 다오(the DAO)'가 투자 DAO인 점을 고려하면, DAO 중 그 역사가 가장 길다.
투자 DAO와 컬렉터 DAO는 최근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기도 하다. 기존 사모 집합투자기구가 엄격한 규제를 적용받는 것과 달리 투자 DAO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기관 전용 사모 집합투자기구는 사원의 총수가 100인을 넘어선 안 된다. 또한, 출자의 방법은 금전에 한정한다. 한 마디로, 모집 인원수뿐 아니라 모금 방법까지 제한을 받는다는 의미다.
이와 달리 투자 DAO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단, 일부 투자 DAO는 미국 적격투자자만 구성원으로 받기도 한다.) 게다가 현금이 아닌 가상자산으로 자금을 보내는 만큼, 고객 본인인증(KYC)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투자 DAO는 자금을 댄 사람에게 거버넌스 토큰(일종의 의결권)을 주는데 만약 그 DAO가 흥행할 경우 그 거버넌스 토큰의 가치도 높아진다. 또한, 투자로 벌어들인 수익을 가상자산으로 분배하는 점도 특징이다. 만약 그 가상자산의 가격이 오를 경우, DAO 구성원은 그 차익도 덤으로 받을 수 있다.
길드(게이밍) DAO는 게임 업계의 판도를 재편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아이템의 소유권을 이용자에게 돌려주자는 웹 3.0 패러다임이 전개되면서 길드 DAO라는 새로운 조직도 등장했다. 웹 2.0 생태계에서 이용자들이 조직한 길드는 몬스터를 잡거나 상대방 길드를 공격하는 등 게임 안에서 협업하는 데 그친다. 웹 3.0 생태계의 길드는 더 나아가 아이템을 대체불가능토큰(NFT) 형태로 발행하고, 이를 판매해 수익을 얻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블록체인 게임(P2E 게임) '엑시 인피니티'의 아이템 생산 방식인 교배(Breeding, 액시를 번식하는 방법)를 활용해 돈을 버는 일드 길드 게임즈(YGG)와 브리더 DAO가 나왔다. 이들은 액시 인피니티에서만 활동하지 않고 샌드박스, 리그 오브 킹덤, 스타 아틀라스 등 다른 게임으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리그 오브 킹덤(노드게임즈)' 이용자끼리 만든 PG DAO(프로게이머 DAO)가 있다.
사회 활동 DAO는 그 성격이 비영리 협동조합과 유사하다. 연재 글에서 몇 번 언급된 유니콘 DAO는 성 다양성 문제를 다루는 창작자들을 지원한다. 어산지 DAO는 위키리크스 창시자 줄리안 어산지의 석방을 돕는 게 목표다. 우크라이나 DAO는 우크라이나 군대와 전쟁 피해자를 돕는다.
다만, 우크라이나 DAO는 다른 DAO와 다른 거버넌스 구조를 취한다. 거버넌스 토큰을 발행하지 않고, 검증된 사람만 DAO의 실무 그룹(Pods) 구성원으로 받는다. 어산지 DAO가 자금 조달자에게 $JUSTICE 토큰을 발행한 것과는 다르다. 적군인 러시아가 거버넌스 토큰을 사들여 DAO에 의사결정권자를 참여할 수 있다는 위험 요소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프로토콜 DAO는 탈중앙화금융(디파이, DeFi) 플랫폼을 발전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메이커 DAO, 유니스왑, 아베(Aave), 컴파운드 등 대표적인 디파이들이 대체로 프로토콜 DAO로 운영된다. 메이커 DAO는 스테이블 코인 DAI(다이) 지급준비금에 실물자산을 포함하는 등을 구성원 투표를 통해 결정하고 있다.
이외 연구/교육 DAO로는 수명 연장 방법을 연구하는 비타 DAO, 웹 3.0 현직이 입문자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스테이츠 DAO 등이 있다.
익명성/조직 형태에 따른 분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출처=쪼하(함지현) 제작
순수하게 다오로 탄생한 곳과 기존 법인(또는 재단)과 관련이 있는 곳으로 구분할 수 있다. DAO 중 전자가 대다수이지만, 최근 점점 후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기존 법인이 일부 업무는 다오로 전환하며 고용 유연화를 꾀하고 있어서다.
조직 형태에 따른 분류는 다음과 같다.
1) 법인 전환형
: 법인 전환형은 법인이 아예 다오로 전환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주로 가상자산을 발행하는 해외 재단들에서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스테이블 코인 DAI(다이)를 발행하는 메이커가 있다. 메이커는 2022년 재단을 완전히 다오로 전환했다.
2) 법인 파생형
: 법인 파생형은 일부 업무를 다오로 분리하거나 법인의 이름을 딴 다오를 따로 운영하는 경우 등을 포괄한다. 법인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법인 전환형과는 다르다. 법인에서 다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형태로도 볼 수 있다. 국내 일부 블록체인 또는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이미 법인 파생형 다오를 시도하고 있다.
3) 다오-네이티브
: 다오-네이티브는 애초부터 다오 형태로 출범한 조직으로, 법인과의 관련성이 가장 낮다. 대부분의 다오들이 다오-네이티브에 해당한다. 그중 아메리칸 크립토 페드 다오 유한책임회사(American CryptoFed DAO LLC) 등 일부 다오는 미국 와이오밍 주나 테네시 주에 다오로서 등기를 마쳤다. 이들은 사명에 ‘DAO’, ‘LAO’, ‘DAO LLC’ 등을 표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처럼 미국 주 정부에 등기한 다오는 소수에 그친다.
구성원 전부가 익명으로 활동하는지 여부도 DAO를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실명을 모르는 채로 온라인에서만 소통하는 DAO도 있지만 구성원끼리 실명도 알고, 오프라인 모임도 하는 DAO도 있어서다.
익명성에 따른 분류는 다음과 같다.
A. 익명 전제형
: 익명 전제 다오에서는 구성원들이 익명을 내세워 활동한다. 오프라인 모임은 당연히 없으며, 온라인 회의도 슬랙(Slack)이나 디스코드(Discord)와 사회연결망 서비스(SNS)에서 텍스트로만 진행한다.
B. 실명 공유형
: 실명 공유형 다오에서는 구성원들끼리 실명을 공유한다. 이들은 정례 오프라인 모임을 열기도 한다. 다오-네이티브 중에서도 실명 공유형 다오를 운영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이번 글은 DAO의 목적과 조직 형태를 기준으로 어떤 DAO들이 있는지 분석했다. DAO는 포괄적인 개념이기에 DAO마다 조직 문화, 거버넌스, 목적 등이 각기 다르다. 우크라이나 DAO처럼 그 목적 때문에 아예 다른 거버넌스를 채택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런 만큼, DAO를 조직하려는 사람이라면 어떤 목적으로 DAO를 설립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 후 어떤 조직 형태를 갖출지, 익명성을 전제로 할 것인지 등등을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DAO에 최적화된 조직 문화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