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부모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언젠가부터 궁금해지지 않았고 알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내 고민이 먼저였다. 내 문제가 가장 컸다. 그래서 미처 알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가 엄마와 아빠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도… <반짝이는 워터멜론> 중에서
부모님과 형이 모두 청각장애인, 가족 중 유일하게 비장애인 소년 은결은 1995년으로 타임슬립해 파릇파릇한 소년과 소녀였던 아빠와 엄마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판타지 청춘 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을 보면 젊은 시절의 부모님에게 지나치게 관심이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해 회한이 밀려든다. 이미 내 청춘도 저물어버린 시점에 새삼스레 부모님의 청춘에 대해 무관심했던 일을 자책하다니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부모님의 젊은 날에 대해 많은 걸 알았다면 두 분을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기억하는 부모님은 30대 후반부터라 생각해 보면 그때도 충분히 젊었던 시절이지만, 학창 시절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꿈을 꾸었을까 요즘 못 견디게 궁금해진다.
엄마는 삶에 대한 통찰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60대 초반, 70대 중반 두 번의 암수술을 받았기에 노년의 엄마는 부쩍 체력이 부치고 눈에 띄게 노쇠해졌지만 돌아가시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안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이제부터 내가 집안일을 맡겠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한마디로 잘라서 거절하셨다.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 살 수 있는 거야. 네가 집안일하는 게 날 위한 일이 아니다. 죽는 순간까지 몸을 움직여 일을 해야 내가 버틸 수 있는 거란다.”
그러면서 식사 준비를 하는 것도 어떤 식재료로 어떻게 요리를 할지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는 게 머리를 쓰는 거고, 식사 준비하면서 몸을 쓰는 것도 엄마한테 도움이 되는 거라고 하시는데 전적으로 옳은 말씀이라 말릴 명분이 서지 않았다.
반면 아버지는 엄마에 비해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는 박한 편이었다. 대신 아버지는 매사에 호기심이 정말 많은 분이었다. 경제적 여력이 있었으면 세상에 그런 얼리어답터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싱가포르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을 무렵이니 2007년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카카오톡이 아직 없을 때였다. 어느 날 Skype 계정을 만들라는 아버지의 메일을 받고, 우리 아버지는 별 걸 다 아시는구나 감탄을 했었다.
1936년생인 아버지가 Skype를 나보다 먼저 사용하기 시작하신 거다. 아버지는 60대 초반 스스로 구청문화센터 컴퓨터 교실에서 컴퓨터를 깨우치셨다. 아버지가 컴퓨터를 사용하실 줄 알아서 가끔 심부름(문서를 메일로 보내달라는 정도였지만)을 기꺼이 해주실 정도로 노년의 아버지는 영민한 분이었다. 평생을 새롭고 신기한 걸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묻고 알고 싶어 하셔서 가끔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끊임없는 호기심은 아버지의 가장 큰 장점이었고, 늙지 않는 비결이었다.
노년에 접어든 부모님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반짝이는 눈빛이 아름다운 분들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오랫동안 삶에 대한 의지와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부모님 덕분이다. 부모님의 젊은 시절은 보석보다 빛나고 귀한 시간이었을 텐데 아는 게 너무 없는 채로 덧없이 세월을 보낸 것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