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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Dec 03. 2022

<오래된 질문>에 답하다

<미움받을 용기>필사를 끝내며

<10월 5일 필사본>

<미움받을 용기> 필사가 끝이 났다. 5월 26일에서 12월 2일까지 매일 조금씩 왼손으로 따라 쓴 책은 삐뚤거리는 글씨체로 공책 두 권에 잘 자리 잡았다. 나에게는 스승과도 같은 책이었다. 왼손이 어설픈 것을 핑계 삼아 최대한 천천히 책 속에 머물렀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오늘 아침, 필사를 끝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상 위에 놓인 책과 공책 두 권을 바라보았다. 고백하기 딱 좋은 순간이었다. 나는 필사를 했던 지난 시간 동안 스승에게 집중하지 못했음을 말했다. 생각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로 오로지 왼손의 움직임과 글씨에만 집중해서 필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홀로 물속에 잠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

<12월 2일 마지막 필사본>

문득 다른 사람들이 필사를 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내가 필사를 시작한 이유는 분명 책의 내용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책에서 철학자는 '과제의 분리'를 하지 못하고 인정 욕구에 사로잡힌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라는 말을 했었다. 내 속에 그런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기까지 며칠을 끙끙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 뒤에 나오는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에 더 깊이 동참하고 싶었다. 하지만 필사를 하면서 나는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한 글자씩 적히는 왼손 글씨에 한눈을 팔았다. 내용보다는 필사의 속도와 한 획 한 획에 더 신경 쓰고 있었다. 느릴 수 있다면 더 느리게 적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성을 들여 공책 한쪽을 채우고 나면 꾹꾹 눌러 담은 내 마음이 보였다. 내가 필사를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재미를 느끼는 것은 분명했다. 이유 없이 하는 나만의 놀이가 아침마다 계속되었다.


필사를 끝낸 후에도 한참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책을 다 이해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가 아니었다. 재미있게 놀고 난 후 돌아서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는 듯해서였다. 좀 더 놀자며 떼쓰는 마음으로 책을 붙잡았다. 지난 6개월 동안 이 책과 무엇을 한 것일까. 혹시 책 속에서 내가 나와 신나게 놀았던 시간은 아니었을까. 내 오른손 글씨가 강약 조절을 하며 흘러내리는 듯한 선으로 되어 있다면 왼손 글씨는 강약 조절 없이 꾹꾹 눌러쓴 담백하고 정직한 선이다. 아직은 왼손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삐뚤빼뚤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그 서툴러 보이는 글씨체가 좋았다. 내가 나에게 이렇게 관대한 적이 있었던가. 괜찮다고 다독여주기보다는 스스로 채찍질을 하는 인생이었는데 왼손으로 미움받을 용기를 얻은 건지 나는 온화한 마음으로 서툰 내 모습을 받아들였다. 

<과학자 노블 교수와 한국 스님들과의 대담집>

책도 시절인연이란 것이 있는 듯하다. 최근에 <오래된 질문>이란 책을 읽었다. 세계적인 생물학자인 데니스 노블 교수가 한국의 사찰을 방문하며 스님들과 대담을 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었다. 교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이라 했다. 알파벳을 나열하는 방법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달라지듯이 주어진 DNA을 지금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도 달라진다는 뜻이었다. 명상으로 삶의 고통을 극복하고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사시는 교수님의 모습에서 미움받을 용기가 생긴 사람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산다는 스승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내가 물려받은 DNA를 나만의 방식으로 잘 배열하며 살고 있는가.


두 권의 책을 접하며 아침마다 했던 필사가 나에게는 명상과 같은 의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야 할 일로 가득 찬 일상에서 꼭 하지 않아도 되고 못해도 되는 필사는 나의 마음을 다독이는 방법이었다. 필사에 재미를 느꼈던 것은 글자를 적는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정성을 쏟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 글자 한 글자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 'ㅂ'을 오른손으로 쓰면 흘려 적었지만 왼손으로 쓰면 4획을 제대로 그어야 했다. 천천히 그리고 연필을 꾹꾹 눌러쓰니 글씨에 애정이 더 갔다. 그리고 내 삶도 필사처럼 정성스럽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오래된 질문 중 하나는 "두려움을 어떻게 다루는가"였다. <미움받을 용기>의 철학자도, 노블 교수도 '지금, 여기'를 답으로 내놓으셨다. 나는 거기에 "괜찮다"는 말을 추가하고 싶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정성스럽게 살아가는 하루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책을 덮으며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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