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남과 매형

by 고니크

사랑이 눈으로 확인되는 시스템이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1분 1초 사랑을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는 스타일인데, 사랑이란 것은 도무지 눈에 보이질 않으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단지 나는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나 사랑해?"


난 이짓을 하루에 삼천 번 이상도 할 수 있어. 나 사랑해는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한 말 베스트 1위일 거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나를 눈썹을 팔자로 내리고 입술을 쭉 뺀 표정으로 본다. 아마 엄마 결핍이 애정 결핍까지 이어져서 저렇게 큰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놉. 나는 엄마가 멀쩡히 살아있던 날들에도 "나 사랑해?"를 달고 살았다.


엄마 나 사랑해?

- 응~ 사랑하지 우리 딸.

(2초 후)

나 사랑해?

- 너무너무 사랑하지~

(5분 후)

나 얼마나 사랑해? 진짜 사랑해?


이 짓을 하루 종일 반복한 날이 있었다. 오후 6시쯤 됐을 무렵엔 엄마가 도저히 못 참고 짜증을 냈었는데...


"어우 넌! 왜 이렇게 엄마 말을 못 믿니!"


...그 이후론 그 정도까진 물어보진 않지만, 난 여전히 못 믿고 있다는 것을... 이제 엄마는 알 길이 없다.


사랑을 확인하려면 말이 아닌 행동을 보라는 사람들이 있다. 말로는 거짓말을 할 수가 있으니까 그 사람이 널 보는 눈빛의 따스함, 달달함, 짓는 표정, 하는 말, 기꺼운 행동을 보고 사랑을 확인하라고. ... 행동도 거짓으로 꾸며낼 수 있다는 걸 왜 다들 간과하는 거야? 나부터가 그런 사람인 걸. 내 눈은 거의 항상 따듯하고, 나는 상대를 좋아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표정을 짓는다. 하고 싶지 않아도 기꺼이 움직여 상대방을 위한 행동을 해.

나한텐, 상대를 안 좋아하는 마음과 그 사람이 기분 좋았으면 하는 마음이 별개인 걸! 뭐, 사랑만큼 나도 어려운 타입인 거... 그래 인정.


얼마 전 내 동생 정우가 우리집에서 하루 묵은 적이 있다. 정우와 정기의 어색한 인사가 이어졌고, 정기는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강쥐 마시를 정우한테 소개 시켜줬다. 정기야 미안한데, 마시는 나랑 정우가 2개월 때부터 15살까지 키운 개야. 잠시 깜빡한 것 같구나. 하지만 정우도 어색했는지 낯선 강아지 보듯이 칭찬을 했다. 모질이 참 좋네요... 뭐 그런 미끈미끈한 시간이 지나고 작은 방으로 들어간 둘.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둘이 뭐하는 거지? 가서 봤더니 정기는 게임하고 있고, 정우는 그 옆에서 그걸 구경하고 있다. 엥? 남이 게임하는 걸 옆에서 왜 보고있어 나와 정우야.


"아냐 괜찮아."


아니... 너 먹을 것도 밖에 있고, 잘 거면 편하게 누워있어도 돼.


"괜찮다니깐."


난 확신했다.

정우가 정기랑 친해지고 싶어서 이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시간을 견뎌내고 있구나. 난 무서운 표정으로 정우를 불러냈다. 터프한 누나미를 보여줌. 진짜 이러지 않아도 돼. 부담 내려놔. 우리는 너가 편했으면 좋겠어. 그걸 듣던 정우가 어려운 얼굴로 입을 뗐다.


"뭔 헛소리임?"


하늘같은 누나한테 헛소리라니 어허.


"내 시간 방해하지마."


정우는 자발적으로 다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이해가 가질 않는다. 뒤따라갔더니 이번에는 정우가 컴퓨터 앞에 앉고 정기가 옆자리에서 구경하는 포지션이다!

너네 뭐해?? 이러지 않아도 돼!!! 정기와 정우는 너나 이러지 말라는 표정으로 "나가"란다.


뭐야... 쟤들 진짜 저게 재밌어서 저러고 있는 거야...? 잠깐... 쟤들 그럼 나 지금 왕따 시키고 있는 거야? 처남과 매형의 1박 2일 만남에서 긴장한 건 나 하나뿐이란 말인가? 정기는 내 (예비)남편이고 정우는 내 동생인데, 그 둘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건 나뿐인데, 그들은 나로서 연결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는 것 같았다.


외로운 밤이 지나고 헤어질 때가 되자 정우가 정기에게 말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으셨는지 모르겠지만 현생에서 다 짊어지고 가시라고. 우리 누나 맡아줘서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며. 내가 말리지 않았다면 정기한테 절까지 했을 거다. 왜 저래 진짜. 정기도 어리둥절해했다. 그런 정기를... 자기 말에 아무것도 모르겠단 표정을 짓는 정기를, 왜인지 정우는 더 슬퍼하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정우와 통화했다. 정우의 첫 마디.


"누나 진짜 작작해."


왜? 뭐를?!


"난 진짜 누나랑 절대 못 사귀어."


야 나도 너랑 사귈 생각 없거든?


"사랑하냐고 좀 그만 물어봐.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왜 궁금한 건데. 사랑하니까 같이 살겠지! 대답을 해주면 좀 믿어! 형 진짜 보살..."


내가 그랬나?


"게임하고 있는데 왤케 말을 걸어. 형 불쌍... 아니다. 끼리끼리다. 그걸 끝까지 계속 대답해주는 사람이나 죽어라 물어보는 사람이나... 광기다 광기."


둘이 정말 잘 만난 것 같다는 말을 듣는데, 왜인지 그 말이 칭찬보단 모욕으로 느껴지는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나 사랑해?"로 엄마를 괴롭혔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사랑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로 태어난 나. 만나왔던 모든 사람의 마음을 타로 카드 뒤집듯 확인하며 이 나이가 됐다. 물론 여전히 그 타로 카드는 해석할 줄 모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날 난감하게 만든다. 말로도 행동으로도, 난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근데 이번에 알았다. 믿을 수 있는 게 하나 있다는 거.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아주 믿음직스러운 징표, 꾸준함. 이제 나는 말 대신, 행동 대신, 꾸준함을 믿는다. "나 사랑해?" 백 번 물어도 응 사랑해라고 끊임 없이 답해주는 꾸준함. 아침부터 저녁 6시까지 대답해주는 그 마음말이다. 날 위한 변함 없는 루틴. 퇴근할 때 마중 나오기, 내 숟가락 밑에 휴지 깔아주기, 에스컬레이터에는 나 먼저 타기 같은 것도 다 포함이야.


사랑 표현은 인내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돈오점수 깨달은 나. 아싸 신난다! 사랑은 참 어려운 문제지만, 난 이제 그 문제를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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