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나는 나를 깨웠나요?
– 자동 재생되는 하루에서, 의식의 깨어남까지
눈이 먼저 떠진다.
그다음은 팔, 몸통,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
하지만 ‘일어났다’는 게 꼭
‘깨어났다’는 뜻은 아니다.
눈은 떴지만,
마음은 감긴 채로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더 이상 새로움이 아니다
첫 번째 알람은 무시되고,
이불 속으로 몸을 더 깊숙이 파묻는다.
두 번째, 세 번째 알람에
비로소 ‘늦겠다’는 말이 떠오르지만,
정작 어디에 늦는 건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흐릿하다.
아침은 더 이상
새로운 날의 출발이 아니라,
견뎌내야 하는 하루의 반복이 되었다.
물 한 바가지로 얼굴을 적신다
거울 속엔 분명 ‘나’가 있다.
하지만 왠지 낯설다.
피곤함에 내려앉은 눈꺼풀,
굳어버린 입꼬리,
감정 없는 무표정.
매일 보는 얼굴인데,
오늘도 또 어색하다.
덜 구겨진 셔츠를 고른다
‘나’를 꾸민다기보다
사회의 요구에 맞춘
무난한 버전의 나를 재현하는 일.
내 취향보단
덜 눈에 띄는 옷,
덜 튀는 색.
내가 선택한 듯 보이지만,
실은 기준 없는 선택들.
주방에서 물을 끓인다.
익숙한 말이 마음에 떠오른다.
내 생각 같지만,
사실 어제도, 그제도,
그 전에도 했던 말일지 모른다.
커피 한 모금은
살아있음을 깨우는 게 아니라,
버텨야 하는 하루를
지탱하는 방패막이 되어버렸다.
나를 부르지 않았다
휴대폰은
수면 앱으로 잠든 시간을 알려주고,
일정 앱은
오늘의 회의와 미팅으로 하루를 채운다.
하지만 그 속엔
“나는 오늘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가”
라는 문장은 없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세상이 나를 부르고
시간이 나를 밀어내지만
정작 나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자기 없음’으로
하루를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아침 무엇을 느꼈는가’라는 질문은
아주 단순하다
그리고 그 단순한 질문이
하루의 주도권을 되찾는 첫걸음이 된다.
살아낸 흔적이 남았나요?
‘오늘 뭐 했는지’는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하루가
“내가 살았다”는 증거로 남는 일은
드물다.
그런 날이 쌓이면,
삶은 흐려지고
역할만 선명해진다.
우리에겐 아주 사소한 순간이 필요하다
그저,
잠시 멈춰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는 것.
“지금, 나는 여기 있다.”
그 한 문장이
마음의 잠을 깨운다.
스스로를 깨웠나요?
아니면 또다시,
삶이 당신을 대신 재생했나요?
지금 이 순간,
잠시 멈춰
자신에게 속삭여보세요.
“오늘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