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식기 전에

by 생각의정원

아침 커피를 내리면서 문득 생각했다. 가치 있는 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원두가 뜨거운 물과 만나 천천히 우러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이상하게도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진정한 가치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고 했던 그 말이.


그때는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십대의 나에게 가치란 성적표의 숫자나 친구들 사이에서의 인기 정도로만 측정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마도 이런 것이었을 거다. 진짜 중요한 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가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늘 동네에서 보는 길고양이를 떠올린다. 그 녀석은 하루 종일 골목 한쪽에 앉아 밖을 내다본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는 분명 그 시간이 무척 소중할 것이다. 햇살을 느끼고, 바람을 맡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 생산성이나 효율성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그런 일들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하면 거창한 것부터 생각한다. 세상을 구원하거나, 많은 돈을 벌거나, 명성을 얻는 것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가치 있는 일이란 크기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가 아닐까 하고.


예를 들어, 매일 아침 빵집에서 빵을 굽는 아저씨의 일을 생각해보자. 새벽 4시에 일어나 반죽을 하고, 오븐의 온도를 맞추고, 갓 구운 빵의 향이 거리에 퍼지도록 하는 일. 그건 단순히 빵을 파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일이다. 출근길에 그 향을 맡으며 미소 짓게 되는 사람들, 갓 구운 빵을 먹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사람들. 그 모든 순간들이 연결되어 있다.


가치 있는 일의 특징 중 하나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행이나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들. 마치 오래된 나무처럼, 겉으로는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계속 자라고 있는 것들.


내가 아는 한 서점 주인은 3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책을 팔고 있다. 요즘처럼 온라인 서점이 판치는 시대에 그 작은 서점은 경제적으로 그리 성공적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 책과 사람을 연결하고, 우연한 만남을 선사하고, 누군가에게는 피난처가 되어주는 것. 그런 일들은 숫자로 측정할 수 없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가치 있는 일이란 결국 연결의 문제가 아닐까? 나와 다른 사람, 나와 세상,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잇는 다리 같은 것 말이다. 그 연결고리가 견고할수록,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것일수록 그 일의 가치는 커진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나누어 쓰는 것처럼, 가치 있는 일은 대부분 소소하고 일상적이다. 아픈 사람을 돌보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누군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 완벽한 커피를 내리거나,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거나, 정원의 꽃을 돌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가치 있는 일이란 나만의 답을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정해준 기준이 아니라, 내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것. 그것이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말이다.


커피가 다 식어버렸다.

하지만 괜찮다.

다시 내리면 되니까.

그리고 다시 내린 커피는 처음 것과는 또 다른 맛일 것이다.

가치 있는 일도 그런 것 같다. 매번 다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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