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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Oct 01. 2024

불안의 경험을 작게 또는 희미하게

전화를 걸 수 없던 아이와 문자를 보지 않는 엄마의 이야기

전학을 온 1학기 때는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이 내 일상의 큰 미션이었기에 그쪽으로 온 신경을 쓰곤 했다. 매일 하교시간에 맞춰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그런데 아이는 운동장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 했고 두세 시간도 거뜬히 놀았다. 그동안 나는 학교 나무그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기다렸다.


2학기가 되고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들의 모습도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2학년 2학기나 됐는데 아이가 노는 걸 기다리는 내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과잉보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2학기부터는 학교가 끝나고 간식 사 먹을 거 사 먹고 놀 거 다 놀고 집에 가고 싶을 때 나에게 전화를 걸면 데리러 가는 걸로 약속했다. 프로젝트를 하며 회의시간이 넘어갈 때는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조금만 놀고 있으면 엄마가 한 시간 뒤에 가겠다는 등의 조정이 될 정도로 아이는 자랐다.


그런데 나의 실수로 아이를 불안에 빠뜨리게 한 일이 있었다.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학교를 마친 시간이 지나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나는 밀린 연재를 하느라 그 전날 새벽 2시에 잤다. 너무 피곤했다. 침대에 잠깐 누워있는다는 게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신기하게도 아이의 하교시간인 3시 30분이 되어 눈이 떠졌다.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지만 와 있지 않았다. '오늘은 하교 후 노나 보네.' 하며 노느라 전화를 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했다. 그리고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삼십 분을 더 자버렸다. 여전히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요즘은 방과 후 수업이 끝나면 십중팔구 바로 집에 오기 때문에 너무 오래 논다 싶었고 이상했다.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는 울면서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내가 문자 여러 개 보냈는데 못 본 거야? (훌쩍) 답장도 없고 전화가 없어서 나 너무 무서웠어. 흑흑"


아이는 요금제를 다 써서 전화를 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가 전화를 해오던 평소처럼 전화만 기다렸지 문자를 보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실수였다. 게다가 스팸문자가 99 퍼센트인 나는 문자확인을 잘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문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떨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하니 아이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일단 전화를 끊고 부리나케 데리러 갔다. 데리러 가는 길,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던 엄마가 생각났다.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아이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아이는 다행히 운동장에 있었고 나무 그늘 아래서 혼자 덩그러니 서서 눈물을 훔치는 아이에게 달려가 꼭 안아주었다. 삼십 분 동안 문자를 보내며 화가 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엄마가 정말 미안해. 전화를 다 쓴 줄 몰랐어. 문자확인도 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엄마는 전화만 기다리고 있었지 뭐야. 정말 정말 미안해."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는 핸드폰 요금제를 변경하는 것이었다. 같은 통신사끼리는 무제한으로 전화가 가능한 요금제가 있다는 안내를 받고 아이의 요금제를 그걸로 변경했다. 이제 나에게 거는 전화가 끊길 일은 없다. 아이와 나는 둘 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이후 한동안은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하는 중이다. 어제 약속장소도 상대가 배려해 준 덕분에 아이 학교 앞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매일 이렇게 할 순 없지만 아이의 불안이 희미해지고 작아질 때까지는 신경 쓰려고 한다. 아이들은 금방 회복하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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