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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Dec 28. 2018

취재원을 대하는 기자

앞선 글(https://brunch.co.kr/@grape/265)에서 기자를 둘러싼 여러 가지 환경 등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했다. 기자가 일을 하면서 마주하는 일부 취재원 얘기를 나누기 전에 썼던 글로,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오늘 글에서는 기자가 발제 후 일부 취재원과 만나 벌어지는 일 등을 러프하게 쓸 예정이다. 매체마다 성격은 다르겠지만 기자가 취재원에게 닿는 과정은 대개 1) 회사에 리스트업이 된 경우 2) 필요할 경우 수소문 두 케이스다. 크게. 1)에 필요 취재원이 있으면 좋겠지만 대개 그렇지 않아서 2)로 귀결될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인맥이든 수소문 실력이든 좋아야 한다. 발로 뛰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 발로 뛰어야 2)가 더 잘 된다.


취재원들은 대개 업계에 빠삭한 이가 있고 그렇지 못한 이가 있다. 미디어에 한 번 노출됐다가 미디어 친화적이 되는 사람도 있고, 미디어에 노출됐다가 생각한 것과 달라 움츠러드는 이도 있다. 두 경우는 나이스하다. 문제는 가운데다. 미디어에 노출은 돼봤고, 혹은 돼보고는 싶은데, 내 마음대로 됐으면 좋겠고. 요즘 기레기들은 불러주는 대로 적는다는데. 나를 띄워줬으면 좋겠고…. 여러 복잡한 심경(?)으로 인터뷰에 응하고는 기사가 나가기 전에 검사하고 싶다느니 오타가 있는 것 같다느니(있는 오타 말고 없는 오타를 만들어낸다) 별의 별 방법으로 피드백을 한다. 기자는 혼란에 빠진다. '이 사람을 신문에 실어도 맞는 건가?' 찝찝한 직감은 그대로 들어맞는 경우가 많아 이 경우 대폭 축소하거나 뺀다. 아무리 언론의 위상이 떨어졌다지만, 어쨌든 사실 확인을 해서 사실을 전달해야 하므로. 이런 경우 섭외 전 상황과 실제 그를 만나고 온 상황이 다를 때인데, 그러면 빼야지 어쩌겠나. 일 두 번 하는 거다.


물론 이런 극단적 상황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대개 취재원 중 일부는(상당수라 부르고 싶기도 하다) 취재 요청 시 잘 확인하지 않고서는 현장서 '이 매체면 인터뷰 안 하는데' 등의 말을 하거나 '이 매체 보수지 아니에요? 난 안 하는데' 따위의 말을 얼굴에 대번 내뱉는다. 이들은 이런 말을 하는 게 일종의 정의 구현 혹은 진보인으로서의 태도 따위로 오인해 예의와 정의를 오해하는데, 실제 우리 매체는 보수지가 아니거니와(JTBC 인터뷰에 중앙일보 꺼니 안 하겠다고 답하는 예시를 들면 편하시려나) 그렇게 단번에 말할 만큼 매체들의 특성이 일면적이지는 않다(사람 by 사람). 그러니 좌우를 떡 가르듯이 갈라 각 매체 소속 기자들을 한 데로 몰고서는, 인간과 인간이 대면하는 자리를 그렇게 대하는 건 옳지 않다. 첫째, 취재 요청 시 이미 알렸으며 둘째, 사전합의된 사항에 대해 본인이 하나도 체크하지 않았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알리는 자세며 셋째, 그런다고 해서 정의는 오지 않는다. 매체에 소속된 기자들 일부는 썩었다. 안다. 하지만 대다수라고 하면 아서라. 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입진보 외친다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아니다. 나 역시 20대, 진보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런 취재원들을 만나면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딱한 마음이 든다.


취재원을 대할 때는 모든 경우에 상냥한데, 상대가 개진상 혹은 범죄자가 아니고서는 기자가 얼굴 붉힐 일은 없다. 대개 없다. 앞에선 웃고 뒤에서 상처받는 식일 뿐. 그게 싫으면 기자 관둬야지 뭐 어떡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더 많으니, 그런 사람들만 기억하려 노력할 뿐이다. 그래서 오늘 쓰는 이 글은 '5. 기사를 읽기 전에 독자가 알면 좋을 몇 가지'와 연관되기도 한다. 독자는 단순히 조중동한경이라고 나눌 게 아니라, 입체적으로 신문이든 방송이든 볼 줄 알아야 한다. 나 역시 타 매체를 대하는 독자이기 때문에 하는 말. 적극적으로 매체의 콘텐트를 수용하라는 측면. 이는 '미디어 리터러시' 개념과도 상통한다. '시청자 혹은 독자가 알 게 뭐야. 너네 기자들 그런 사람들이잖아', '우리가 알 게 뭐야. 너네 진보지잖아. 너네 보수지잖아', '시청자는 거기까지 몰라' 말고. 언론을 좀 제대로 감시할 시선이 필요하다는 거다. 감시자로서의 언론을 누가 감시하겠어. 수용자밖에 없다. 이름이 수용자라 좀 소극적으로 보이니, 시청자 혹은 독자라고 다시 말하겠다.


① 기사를 쓰는 기자의 태도-①

② 지면 기사와 온라인 기사, 고양이로 알아보자-①

     지면 기사와 온라인 기사-②

③ '취재원을 대하는 기자의 태도'에 앞서

     취재원을 대하는 기자

④ 기자에게 생기는 직업병

⑤ 기사를 읽기 전에 독자가 알면 좋을 몇 가지

⑥ 일부 언론사의 고질병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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