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마틴 파울러가 되기
동료가 좋아하는 에스프레소 전문점에 갔습니다. 뜨거운 커피와 아이스커피 둘을 시켰는데, 두 잔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게 만드는 쟁반을 들면서 헛웃음이 나고 습관처럼 FFF(Form Follows Fuction) 원칙을 무시하는 카페 운영을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남겼습니다.
FFF는 임춘봉 훈장님께 오래전에 배운 공학 원리 중에 하나입니다. 기능이 모양에 우선하니 모양을 설계(디자인)할 때는 기능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이죠.
그런데, 앞의 접시의 경우 쟁반의 2가지 기능을 무시했습니다. 쟁반이 너무 작아서 음료가 담긴 두 개의 커피잔을 편안하게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로봇이 전달해 준다면 모르겠지만, 손님이 들고 가다가 실수로 흘릴 수도 있고 일단 '이게 뭐야?'라고 당혹하는 장면은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커피와 아이스가 붙어서 나가야 하는 장면 역시 가게가 자랑하는 '맛'의 전달에도 손해가 됩니다. Form이나 시각 효과가 우선해서 기능(물질적 특성이나 소비자 경험)을 무시한 것으로 의심이 됩니다.
글을 쓰면서 회사 운영 과정에서의 시행착오 경험이 상승작용을 합니다. 서비스 혹은 프로덕트라고 부르는 성격의 제품들은 시장에서의 기능은 다름 아닌 시장이 결정합니다. MVP와 같이 쓰임새를 시장 판단에 맡기는 행동 패턴도 이를 반영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용자와 가격 혹은 시장의 주목 등이 기능을 결정하는 측면도 있구나.
최근에 극장에 간 일이 있습니다. 극장에서는 제품 광고를 반복적으로 했습니다. 똑같은 광고가 계속 나오니까 일종의 노이즈처럼 여겨졌습니다. 관객들을 관찰해 보니 이미 대다수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볼모가 될 뻔한 자신들의 눈에게 자유를 선사했습니다. 시장을 무시한 광고에 대처하는 합리적인 소비자의 대응이라 느껴졌습니다.
한편, 집에서 욕실에 양치를 하러 갔다가 칫솔 구성을 보고 문득 소비자의 다양한 욕망이 표출된 모습 같아 찍어 두었습니다. 보통은 아내가 일괄로 사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저와 어린 두 아이가 모두 자기 칫솔을 고른 듯한 이색적인 광경이었습니다.
큰 아이가 샀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거울에 부착할 수 있는 기능을 퍽이나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둘째는 브래드 이발소 만화 캐릭터를 저에게 자랑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쓰는 칫솔은 아내가 자기는 맨날 같은 기준(브랜드)으로 산다면 나에게 고르라고 해서 칫솔모의 모양과 제조사라는 두 개 변수를 기준으로 순식간에 골랐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다양한 조합이 만들어진 듯합니다.
시장에 제품이 많아지면서 벌어지는 일이 '기능'의 다양성인 듯합니다. 기본기를 갖춘 제품이 충분히 많아지면, 본질적 기능을 넘어서 다양한 요인이 기능에 편입된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장기 구독 중인 HBR 인용 사례를 떠올려 볼까요?
<AI가 고객과 직원의 자기 인식에 미치는 영향>에서는 '소비자 정체성 위협'이라는 표현도 등장하고요.
<의식 있는 비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법>를 보면 환경 변화에 대처하는 삶의 양식이 소비에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대량생산의 시대가 가고, 다양한 욕망을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기능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질문을 제시합니다.
마침 이 글을 쓰고 나서 보게 된 페친님 글에 관련이 깊은 문구가 있어 인용합니다.
2. 대상과 조건 그리고 자기 속도에 부합하는 조건 만들기
4. 기술 부채를 Code Smell로 관리할 수 있는가?
6. 설계 요소의 사분면
7.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소프트웨어 설계에 응용하기
8. 즉흥적으로 그린 그림에 입자와 파동 이중성 적용하기
13. 설계는 변화에 대한 준비인가?
18. 동료의 상태도를 검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