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시도하는 설계의 정석
아내가 아이들 눈높이에 붙여 둔 지도를 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지도도 바뀌어야겠네요?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물어보니 전남광주특별시는 오는 7월을 목표로 통합을 진행 중에 있고, 다른 지역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1]
그런데, 뒤이어 아내가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충청도와 경상도는 애초에 충주와 청주, 경주와 상주를 거점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충남'이나 '경북'을 이름에 넣으면 의미가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작명의 바탕이 되는 지역을 중심에 두는 것은 이미 조선시대에 시효가 지난 것이 아니냐고 답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 두 가지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아내와 제 생각의 바탕에 놓인 상식 혹은 가치관 차이입니다. 어쩌면 아내가 꺼낸 논리는 '전통을 중시하는 발상'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저는 조금 더 '실용'이나 '실상을 반영하는 쪽'에 기울어진 것일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여기서 이러한 작명의 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압착' 현상으로 관심이 옮겨 갔습니다. 잘 쓰지 않는 압착이란 말을 쓰게 된 바탕에는 최근에 두 아들과 포스코(포항제철) 견학을 다녀온 영향이 작용한 듯합니다.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실천으로 한자사전을 찾아봅니다.
압착이라는 말이 여기 어울리는 말일까요? 애매하네요. 줄임말을 쓴 것을 '압력을 가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물질'의 밀도는 아니지만, '의미'의 밀도를 높였다고 할 수는 있을 듯합니다.
압착 대신 퇴적이나 누적은 어떨까요?
퍼플렉시티에 물어보니 경기도나 전라도 같은 이름은 이미 고려 때인 1018년에 형성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긴 시간을 거치면서 '전주'라는 씨말의 뜻은 희석되고, '전남광주특별시'와 같은 형태로 변하는 일은 퇴적(堆積)이나 누적(累積)이라는 말과 잘 어울립니다.
퇴적이 흙무더기(堆)를 씨말로 하기에 자연에 의한 행위를 뜻하지만, 의미의 누적은 말을 도구로 하기에 인위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인위적인 누적으로 생각이 흐르자 기억에 흔적이 있던 이미지를 찾아보게 됩니다. 다행히 보관되어 있네요.
좌측은 유튜브 채널 영상에서 캡춰한 그림입니다. 극단의 내부 효율을 구축한 사례인데, 그 기저에는 '집약적 모듈'이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림은 전형적인 다층(multi-layered) 형태로 발전하는 AI 기술군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이들이 누적 혹은 압착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몇 날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니, 중요한 의사결정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덮느냐?
흥미로운 발견인데, 독자님들과 이를 나누려면 훨씬 더 긴 글이 필요할 듯하고 쉽게 설명할 준비도 아직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다만 오랜 설계 경력을 통해 익숙했던 개념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은 부분만 기록해 두고 훗날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정보 은닉 혹은 캡슐화
[1] 수도권 일극에서 ‘5극 3특’으로, 대한민국 성장지도 바뀐다.
1. 옵션: 공동의 가치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안내와 제안
2. 바보야 문제는 콘텐츠야
4. Perspective와 Viewpoint는 무엇인가?
5. 하나의 시스템을 보는 다양한 생각을 담는 조감도鳥瞰圖
6. 소프트웨어 조감도의 기초 재료는 기호, 작명, 구조
8. 메뉴는 콘텐츠 노출과 그에 따른 사용자 트리거 도구이다
9. LLM의 Stateless 구현과 AI제품의 싱글톤
11. 소프트웨어 설계에 대한 책을 왜 쓰려고 하는가?
13. 이슈화, 이름 붙이기 그리고 개념과 설계의 관계